국립고궁박물관장 "K-왕실 유산의 보물 창고, 세계에 알릴 것"
개관 20주년 맞아 준비 한창…"전시·교육 가능한 제2 수장고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조선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한 그림, 궁중 행사에 쓰였던 섬세한 공예품, 왕과 왕비가 입었던 화려한 옷차림….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 이르면 2027년 미국에 소개된다.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이 집약된 왕실 유물의 '해외 진출'인 셈이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우리나라 왕실 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2027년에 미국에서 'K-왕실 유산'을 주제로 한 특별전 개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관장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조선 왕실 유산의 아름다움과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왕실 유물을 해외에서 선보이는 건 처음이 될 전망이다.
박물관은 왕실 유산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최근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과 덴버박물관, 경기도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4곳과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정 관장은 "국립고궁박물관은 우리나라와 세계를 대표하는 'K-왕실 유산의 보물창고'"라며 "'K-컬처'의 뿌리가 된 우리 문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조선 왕실의 유산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보물 창고'가 세계적인 보물 창고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소장품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도, 가치도 무궁무진합니다."
어느덧 취임 100일이 지난 그는 "해야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고 했다.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연구직으로 시작해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문화유산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그는 보존과학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문화유산 분야의 주요 국제기구이자 유네스코 공식 자문기구인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이크롬) 이사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국제 업무도 맡았다.
그는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으로 개방형 직위를 공개 모집해 임명된 사례로 주목받은 바 있다.
보존과학 분야 학예 연구직으로 시작해 국립박물관 수장에 오른 것도 그가 처음이다.
정 관장은 "과학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는 영역"이라며 "창의적인 상상력과 융합적 사고로 박물관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왕실 유산을 연구하고자 하는 젊은 학생들과 함께 발전하는 박물관이 되고 싶다"며 대학생과 대학원생이 참여할 수 있는 연구 논문 경진대회(공모)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유산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해온 그는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솔직히 털어놨다.
정 관장은 "문화유산 보존은 수리와 복원 중심으로 예산과 정책이 수립돼 왔으나, 앞으로는 기후변화 대응 등 체계적이고 과학적 보존을 위한 예방적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유산의 진정성 있는 보존·복원을 위해서는 전통 재료의 복원, 문화유산 현장에서의 사용 증대, 판로 확대를 위한 정책과 생태계 복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박물관은 2025년을 맞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조선 궁궐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과 연계한 문화 시설로서 2005년 8월 15일에 개관한 박물관은 내년에 20주년을 맞는다.
이를 위해 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조선의 국왕실, 조선의 궁궐실, 왕실의 생활실)과 평창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등 곳곳은 잠시 문을 닫고 새롭게 단장 중이다.
정 관장은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많은 부분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간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면 이제는 어떤 역할을 할지 돌아볼 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환경·사회적 책무·기업지배구조 개선(ESG), 기후 변화 대응, 세대 간 혹은 지역 간 격차 해소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고민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 물론 쌓여있는 과제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제2 수장고 건립 문제다. 개관 당시 3만여 점이었던 소장 유물은 어느새 8만8천530점(5월 기준)으로 크게 늘어 포화율이 160%에 달한다.
더군다나 1979년에 지은 본관의 전시동(옛 중앙청 후생관 건물)의 경우, 공간이 제한돼 있고 증·개축도 쉽지 않아 전체 소장품 가운데 2% 정도만 공개하는 실정이다.
정 관장은 "박물관 외부에 별도 수장시설을 빌려 운영하고 있으나 그에 따른 예산 문제와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산뿐 아니라 세계기록유산 유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공개하기 위해서는 (수장품 보관, 전시, 교육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 형태의 제2 수장고(가칭 '조선왕실유산관') 건립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하반기 왕실 유산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디지털 전시도 이어갈 계획이다.
7월에는 프랑스 기업 히스토버리와 함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최근 발생한 화재, 복원 과정 등을 다루는 증강현실(AR)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궁중음식을 다루며 무형유산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특별전도 하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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