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간절하면 목숨 걸고 나가는 게 인간” … 구교환 “남의 꿈 막는 건, 사실 질투하는 것”[영화 ‘탈주’]
탈주 시도하는 인민군역 이제훈
숨멎을 듯이 달리며 연기
물 한모금 마실 때도
극중 역할 생각에 머뭇
그를 뒤쫓는 장교역 구교환
꿈접고 운명 순응하지만
이상-현실 괴리 느끼는 인물
계속 질문 던지며 고민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7월 3일 개봉)는 남한으로 도망치려는 북한 인민군 중사 규남(이제훈)과 그를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추격전이 94분간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진다. 표면적으로는 너를 죽여야 내가 사는 극한의 대결이지만, 어릴 적 친한 형, 동생 사이였던 이들의 과거사가 맞물려 독특한 질감의 청춘 ‘브로맨스’로 느껴진다. 배우 이제훈과 구교환은 그런 점에서 규남과 현상을 연기할 적임자였다. 이미 공개석상에서 ‘손하트’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던 둘은 평균 연령이 높아진 충무로에서 ‘청춘’을 연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남배우들이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카페에서 영화에 진심이고, 서로에게 진심인 둘을 만났다.
북한 인민군 중사 규남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속 ‘행복하자’란 가사를 되뇌며 자유에 대한 꿈에 부푼다. 그는 꿈을 찾아 남쪽으로 탈주한다. 영화는 꿈을 향해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규남의 ‘외형적 탈주’와 꿈을 접고 운명에 순응하던 현상의 ‘내면적 탈주’가 조응을 이룬다. 그런데 사실 규남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향해 달렸던 건 현상 덕분이었다.
이제훈은 “‘죽음보다 의미 없는 삶을 두려워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규남에게 탐험가 ‘아문센’ 책을 준 사람이 어릴 적 친한 형이었던 현상”이라며 “이상향을 향해 질주하는 규남의 마음은 현상이 심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현상은 탈주하는 규남을 보며 운명에 순응한 자신을 혼란스러워한다”며 “둘이 맞닿아 있는 지점 덕분에 단순한 추격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규남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으로 달린다. 이제훈은 늦었다면 늦은 나이인 20대 중반, 주변의 반대에도 연기자로 뛰어들었던 자신을 투영했다. 그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배우를 꿈꿨지만, 주변에선 불확실성이 크다며 만류했다”며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무릅쓰는 탈주와 연기는 다르지 않냐는 물음에 “나는 목숨 걸고 (연기)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규남은 온갖 장애물에 부딪히지만, 굴하지 않고 앞으로 직진한다. 달리는 차량에 카메라를 매달고, 그 차량을 따라가면서 달릴 땐 “헐떡이다 숨이 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몸을 던지는 열연으로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는 후유증도 안게 됐다.
이제훈은 “배우 이제훈이 연기하는 순간과 영화 속 규남이 처한 상황의 괴리감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물 한 모금을 마실 때도 규남의 배고픈 상황이 생각나 주저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갈아 넣지 않으면 규남이란 인물을 진실 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머리가 핑핑 돌아도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현상은 북한 엘리트 장성 집안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별까지 단 전도유망한 군인. 냉철하게만 보이는 현상이지만, 실은 피아니스트란 꿈이 있던 감성 촉촉한 인간이다. 꿈이 있지만, 현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규남과 현상은 ‘동전의 양면’ 같다. 구교환 역시 “늘 상대역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엔 특히 규남이의 액팅(탈주)이 현상의 액팅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현상이 궁금했다. “왜 이토록 규남의 탈주를 막으려고 할까.” 그가 내놓은 해답은 의외지만 탁월하다. 구교환은 시사회에서 “현상이 추격하면서 규남이를 부러워하고 질투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란 꿈을 속으로 삭인 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현상이 거침없이 꿈을 향해 달리는 규남에게 자극을 받았을 것이란 얘기다.
특별 출연한 송강이 맡은 선우민과의 관계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상은 피아니스트였던 시절 애틋했던 친구였던 선우민을 연회장에서 다시 만난다. 구교환은 “내게 영감을 준 존재를 군인이 돼 다시 마주했을 때로, 굉장히 창피하고 부끄러운 상황”이라며 “피아니스트는 현상이 가야 할 곳이고, 지향했던 꿈인데 현실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현상이 처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대사로도 잘 나타난다. 현상이 타인에게 하는 말은 사실 자신에게 향하는 말이다. 초반 규남에게 했던 “너,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가 대표적이다. 구교환 역시 “‘본인한테 말하는 건데 남한테 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구교환은 독특한 톤으로 현상의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한다. 이 때문에 기능적 역할에 그칠 위험이 컸던 추격자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구현됐다. 다만 치열함을 강조한 플롯과 몽글몽글한 인물의 감성이 어우러지지 않을 때가 간혹 있다. 구교환은 “맡은 역할을 의도적으로 특이하게 보이도록 하진 않는다”며 “다만 그 인물을 좀 많이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연기할 때 반은 차갑게, 반은 뜨겁게 하고 싶어요.”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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