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여정 끝나고 해 뜰 때까지… 우리 함께 걸어요[주철환의 음악동네]

2024. 6. 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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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들국화 또 내일은 장미꽃' 여기까지만 듣고 바로 흥을 실어 부를 수 있다면 당신은 트로트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 분도 계실 것이다.

'땡벌'이 '뮤직뱅크'를 접수한 이듬해(2008년) 이찬원은 대구 선원초 6학년이었다.

견뎌내고 이겨냈기에 노인이 된 것이고 거기에 살아온 지혜를 더한다면 그게 바로 금상첨화(그 꽃이 들국화건 장미건 간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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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찬원 ‘하늘 여행’

‘오늘은 들국화 또 내일은 장미꽃’ 여기까지만 듣고 바로 흥을 실어 부를 수 있다면 당신은 트로트의 고수라 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 분도 계실 것이다. ‘비열한 거리’(2006)에서 조인성이 운전하며 열창하던 그 노래. 나훈아 작사·곡인데 지금은 강진(1955년생)의 대표곡이 됐다.

이 노래엔 역사가 있다. 1987년에 나훈아가 직접 불렀으나 워낙 히트곡이 많은 분이라 재고로 남았다. 오랫동안 무명이던 강진은 희자매 출신 아내(김효선)의 감성(듣는 귀)과 조력으로 직접 나훈아를 찾아갔고 이 노래를 녹음할 수 있도록 간청했다. 가황의 ‘윤허’를 받고 2000년에 발표했지만 기대했던 메아리는 울리지 않았다. 묻힐 뻔했던 그 노래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영화에 삽입되면서 야금야금 울려 퍼졌고 ‘비열한 거리’는 졸지에 강진을 ‘비옥한 거리’로 내몰았다. 노래 탄생 20년 만에 ‘뮤직뱅크’(KBS2)에서 1위(2007년 9월 21일)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고 급기야 은행(뱅크) 잔고도 치솟았다.

나훈아는 원곡에 가사 몇 줄을 첨삭해 강진에게 줬는데 추가된 가사 중엔 ‘치근치근 치근대다가 잠이 들겠지’도 있다. 치근대는 건 귀찮게 한다는 말이고 중간에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로 위기 신호도 날려보지만 정작 끝은 해피 엔딩이다. ‘당신을 좋아해요 땡벌 땡벌 밉지만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해’ 가끔은 성가시지만 결국 넘치도록 아끼고 고맙다는 고백을 담은 노부부 연가다.

청소년의 아성으로 굳건한 ‘뮤직뱅크’나 ‘쇼 음악중심’(MBC)에서 트로트를 접하긴 어렵다. ‘땡벌’ 사태 이후 17년 만인 지난 5월 3·4일, 두 프로에서 모두 1위(‘하늘 여행’)를 거머쥔 트로트 가수가 나왔는데 바로 ‘찬또배기’ 이찬원(1996년생)이다. 평상시 밝은 모습과 노랫말에 깃든 황혼의 사랑이 대비를 이루면서 4분 동안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내 손을 잡아주세요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요’로 시작해서 ‘저 멀리 하늘이 우릴 함께 부를 때 우리 하늘 여행 떠나요’로 끝나는데 여기서 하늘 여행은 비행기 타고 떠나는 칠순 여행이 아니라 지상에서 함께 살다가 천상까지 동행한다는 의미다.

‘땡벌’이 ‘뮤직뱅크’를 접수한 이듬해(2008년) 이찬원은 대구 선원초 6학년이었다. 전교 회장 선거에서 ‘땡벌’을 개사하여 부르며 어린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학생 신분으로 전국노래자랑에 4번(초·중·고·대) 나간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이름처럼 ‘찬찬’히 들여다보면 노래를 자랑하러 나갔다기보다 노래를 사랑해서 나간 게 분명하다. 젊디젊은 그가 인생 영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를 꼽은 점도 신기하다. 사실 노인이 된다는 건 그때까지 살아남은 결과물이다. 견뎌내고 이겨냈기에 노인이 된 것이고 거기에 살아온 지혜를 더한다면 그게 바로 금상첨화(그 꽃이 들국화건 장미건 간에) 아닐까.

나이 들면서 괴로운 건 마음에 가시나무를 심기 때문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어떤 경우에도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지음) 그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해지는 건 간단하다. 다만 간단해지기가 어려울 뿐.’ 명랑 청년 이찬원의 좌우명도 일맥상통한다. ‘인생은 복잡하지 않게!’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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