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

김재태 편집위원 2024. 6.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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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대한민국 국회에, 그것도 새로 문을 연 국회에 기대를 걸었던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이번 22대 국회는 지켜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구차하고 졸렬하다.

물론 국회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여당의 원죄가 적지 않다.

"이재명 방탄용 국회"라고 비판하며 국회 일정 보이콧 으름장으로 맞서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묘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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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언제 대한민국 국회에, 그것도 새로 문을 연 국회에 기대를 걸었던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이번 22대 국회는 지켜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구차하고 졸렬하다. 툭하면 소소한 일로 싸움을 일삼던 모습을 넘어 함께 해보려는 자세조차 처음부터 아예 보이지 않는다. 총선 압승을 등에 업은 민주당은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보란 듯이 반쪽 개원을 밀어붙인 데 이어 11곳의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10일 국회 본회의장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있는 가운데 상임위원장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을 통해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의 기세는 의기양양을 넘어 그야말로 '독기양양'이다. 국회의장단·원내대표 선출 때 권리당원 유효투표 결과를 20% 반영하고, 당대표 사퇴 시한을 당무위 의결로 결정한다는 내용으로 당헌·당규를 개정해 당원 중심의 정당을 스스럼없이 만들어가는 모습이 우선 눈에 띈다. 11곳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면서는 당대표의 입으로 "몽골 기병과 같은 자세로 입법 속도전에 나서겠다"고 공개 천명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표를 제3자 뇌물 혐의로 기소한 검찰 수사팀을 겨냥한 특검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법왜곡죄' 조항을 형법에 새로 넣어 판사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에 더해 "검찰 애완견"이란 발언으로 언론과 척지는 행동조차 서슴지 않았다.

물론 국회가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여당의 원죄가 적지 않다. 지난 총선에서 자신들의 무능과 실책 탓에 민심의 질책을 받음으로써 다시 여소야대 국면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그 업보로 떠안은 것이 상대적 소수 의석이고, 그 미약함으로는 몸집이 더 큰 야권 정당들을 상대하기가 현실적으로 벅찰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민주당이 자신들의 말처럼 '몽골 기병'처럼 거칠게 내달려도 맞대응할 힘이 여러 면에서 떨어진다. "이재명 방탄용 국회"라고 비판하며 국회 일정 보이콧 으름장으로 맞서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묘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여권 내에서조차 "뾰족한 카드나 전략이 없어 보이니 어차피 들어갈 거면 빨리 들어가는 게 낫고, 18개 상임위를 다 주든가 7개라도 받든가 해서 열심히 들어가서 치열하게 싸우라"(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말이 나올 정도다.

거대 야당이 일방으로 국회를 이끌어가고 여당이 협상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끌려가면서 '이재명 방탄'과 '대통령 거부권'의 맞대결로 계속 치달으면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당이나 정부가 아니라 일반 국민이다. 국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아수라 같은 상황이 빨리 정리돼 국회가 민생 입법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야권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좋지 않게 본다'(49%)라는 응답이 '좋게 본다'(37%)보다 높게 나온 것도 그런 민심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국회가 하루빨리 찾아야 할 길은 '협업의 정치'다. 민심을 우선해 거대 야당이 먼저 몸을 낮춰 손을 내밀고, 여당은 상생을 위해 그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당이 몽골 기병처럼 '빠르게' 가는 길보다는 국민 전체를 위해 '바르게' 가는 길을 택할 필요가 있다.

지난 봄날을 되돌아보면, 도도하게 몸을 세운 나무 위에서 화사했던 꽃들은 비가 내린 후에 서둘러 지고, 낮게 웅크려 옹기종기 어깨동무하며 슴슴하게 피어있던 철쭉들은 더 많은 날을 살아남았다. 화려하게 흐드러진 꽃이 아름답지만, 덜 예뻐도 길게 피어 오래 향기로운 꽃 또한 아름답다. 그 흔한 꽃들에게서도 배울 게 많다. 

김재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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