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밀착 부른 ‘외교 방치’…한반도, 신냉전 최전선 됐다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4년 만의 북한 방문과 동맹에 준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조약) 체결은 한반도 정세의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핵무기를 쥐고 러시아의 강력한 군사·외교 지원을 받는’ 북한의 등장은 지난 30년의 탈냉전 한반도 정세를 완전히 바꾸고, 한국 안보에 극도로 불리한 위협적인 변수의 등장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를 꺼내 들고 러시아의 태도를 바꿔보려 한다.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한다면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23일 “러시아가 고도의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고 하면 우리에게 더 이상 어떤 선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유라시아 양쪽에서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욱 강하게 맞물리고 있다.
한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정부의 상황 인식과 대응 카드는 적절한가. 외교·안보 전문가인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주러시아 대사)과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에게 물어봤다.
이들은 북·러 밀착이 ‘유사시 자동 개입’이나 러시아의 첨단군사기술 북한 제공 등을 넘어 북한의 국제 위상과 한반도 안보 정세를 완전히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에 대해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란 큰 그림을 들어 회의적으로 봤다. 또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으로 나아간다면, 한반도 안보 환경은 한국에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강 대 강 대응으로 위기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고 우려했다.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와 9월 러시아 극동 우주기지에서의 북-러 회담 뒤에도 러시아와의 외교를 방치해 ‘북-러 조약’이라는 외교 참사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가 러시아의 대응을 보면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를 쓰겠다고 하지만, 이미 무기 지원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러 밀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선언했을 때, 또는 9월 북·러가 우주기지에서 만나서 정상회담을 했을 때 북·러가 안보협력 수위를 격상시킬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때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카드’를 들고 러시아와 막후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했으면 이번 북-러 조약 체결까지는 안 갔을 수도 있다. 북·러 밀착은 윤석열 외교의 최대 외교 실책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를 발표하고 블라디미르 푸틴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러시아와의 외교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무기 지원 카드를 꺼내 러시아와 외교를 하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뒤늦게 무기 지원을 카드로 삼아 러시아를 압박하려 해도, 한-러 간에 거래가 될 수 없다. 북·러는 이미 시동을 걸었고 계속 가게 되어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 기술까지는 안 주더라도 그 이하의 많은 기술들을 줄 수 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안 해도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무기 지원을 하면 더 공공연하게 북한을 지원할 것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것으로 보는가?
“윤석열 정부는 이미 무기 지원 검토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무슨 전략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미국이 주도하는 대로 따라가고 그 때문에 생겨나는 북·중·러의 반작용에 대해서 무신경하다.”
―북-러 조약 체결 이후, 북한의 행동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북한은 미-중, 미-러 진영 대립 속에서 한쪽 진영에서 공고한 안전 보장을 확보했다. 이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동을 더 대담하게 만들고 남북 사이의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김정은은 미국을 움직이기 위한 핵실험 등에서도 더 대담해질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 놔두는 등 남북 충돌이 나도 괜찮다는 식이다. 매우 위태롭다.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고 말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북-러 동맹도 끝날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명확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전선이 교착된 상태로 동결될 가능성이 높다. 대러 제재도 지속될 것이다. 북·러 밀착도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한-러 관계가 쉽게 복원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안보·국제관계 전문가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러 동맹 관계가 복원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후원자와 핵무기까지 가진 북한이 등장한 데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하면 한국은 마지막 레버리지(지렛대)까지 잃게 된다면서, 정부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고 우려했다.
―푸틴 방북과 북-러 조약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북-러 동맹 관계 복원의 출발점이다. ‘유사시 자동 개입’이나 러시아가 첨단 군사 기술을 북한에 줄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 안보적 측면에서 북한의 국제적 지위가 공고화된 것이고 한국이 대단히 불리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과 군사적 관계는 맺지 않았는데, 이제 북한은 러시아라는 군사적 지원자까지 생겼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후원자를 갖게 되면서 한국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협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북-러 관계는 약화될까?
“북·러가 군사적 동맹 복원 외에도 에너지와 포탄을 교환하는 것을 비롯한 광범위한 경제적 협력에도 합의했다. 군사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대단히 포괄적인 협력 관계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북-러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로 국면을 바꿀 수 있는가?
“정부가 러시아에 대단히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를 꺼냈는데 레버리지가 될지 의문이다. 푸틴은 한-러 관계도 조금은 관리하고 싶은 의도는 있는 것 같고, 북한에 핵심 기술을 한꺼번에 주는 것은 러시아의 이익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나갈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까지 공개적으로 압박해서는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 지원은 막기 어렵고, 한-러 관계만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실제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한다면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지고 한국은 마지막 레버리지마저 상실하게 된다.”
―북·러 밀착을 탐탁해하지 않는 중국을 잘 관리하면 북·러 밀착도 관리할 수 있는가?
“중국은 이미 러시아, 북한보다 훨씬 위에 있다. 북·러 밀착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북한이 동아시아를 더 불안정하게 하는 행동에 나선다면 불편하겠지만,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으면 중국과 러시아의 양해 속에서 북·러 밀착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이런 큰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럴수록 진영 대결 구도가 너무 깊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정부가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
33년 동안 러시아 외교의 현장에 있었던 이석배 전 주러시아 대사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큰 틀 안에서 북·러 밀착이 진행되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가 러시아의 행보에 변화를 주기 어렵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오히려 한국이 치명타를 입게 되는 상황의 경중을 잘 따져야 한다고 했다.
―푸틴의 북·러 밀착 의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남북, 북-러, 한-러 관계로만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우선 러시아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비슷한 안보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이에 맞서려 한다. 두번째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행보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큰 대결 구도 속에서 북·러 밀착을 진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재검토’ 카드는 효과가 있을까?
“지금까지 나토와 미국으로부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라는 엄청난 압박이 있었지만, 정부는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북한과 러시아가 이렇게 밀착한 데 대해 이렇게 나가면 러시아도 ‘안보 딜레마’(안보를 튼튼히 하려다 안보가 취약해지는 역설적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카드로 러시아의 행보에 근본적 변화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무기 지원 문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
“우리가 주는 살상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러시아가 북한과의 공조를 강화해 민감한 군사기술을 준다든가 해서 우리가 입을 치명타의 경중을 잘 따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북·러 밀착은 끝날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구도는 오래 지속되고, 한-러 관계도 상당 기간 어려울 것이다. 한-러 관계가 복원되려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풀려야 하지만, 전쟁이 종결된다고 해도 이 제재 레짐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대해 한국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푸틴이 이번 방북을 앞두고 한국에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한-러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이번에 북-러 조약을 맺었으니 한-러 관계가 끝이라는 식으로 일희일비할 상황이 아니다. 한-러 관계가 상당 기간 격랑을 겪겠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관된 한반도 안보 환경 변화를 잘 관리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 한-러 관계를 여야 진영 싸움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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