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과는 ‘옛말’ 이젠 강원도서 온다…이상기후에 재배지 대이동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6. 24. 0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플레이션 대응 비상
값싼 양파·고구마 공급 위해
전국서 거래처 찾기 안간힘
소비자들 수입산 선택 늘어
대형마트 체리·포도·오렌지
올 매출 최고 50% 이상 뛰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이마트 수입 과일 매대에 고객이 북적이고 있다. 반면, 올해 가격이 치솟은 국산 과일 매대는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박창영 기자]
22일 오후 서울 이마트 영등포점의 식품 매장. ‘원플러스원(1+1)’ 과일과 할인율을 대폭 올린 특가 신선 식품으로 손님을 잡으려는 직원들 목소리가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가격표를 쳐다볼 뿐 선뜻 쇼핑 카트로 옮기지 않고 있었다.

주부 박서빈씨(56)는 “채소는 식구가 많지 않으면 나눠 먹기가 쉽지 않아 올해 구입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직장인 하지수씨(35)는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과일 조차도 전체적으로 많이 비싸졌다”면서 “이제 맛만 있다면 국산인지 수입인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산다”고 전했다.

이마트는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수입산 과일 매출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체리, 망고, 오렌지, 수입산 포도 매출이 각각 25~53%가량 늘며 신장률 기준으로 3년새 최고치를 찍었다. 수입 과일 증가세는 다른 대형할인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과일 값 급등세를 완화하려고 할당관세를 대대적으로 적용한 영향도 있다. 할당관세는 수입 농축산물을 확보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관세율을 낮추는 제도다. 기후플레이션에 따라 직격탄을 맞은 사과, 배, 포도 같은 국내산 과일보다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수입산 과일이 식탁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수입 과일 매출은 매년 소폭 신장세를 기록해왔지만, 올해는 특히 국산 과일 작황이 부진해 수입 과일 매출 상승 폭이 컸다”고 설명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초소용량 과일을 사먹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20일까지 간편·컵과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2.3% 증가했다. [BGF리테일]
잘게 잘라서 판매하는 소용량 과일 매출도 대형마트 3사에서 20% 이상씩 증가했다. 조각 과일은 일반 과일과 비교할 때 동일 무게를 기준으로 10~30% 더 비싸지만, 필요한 만큼만 사서 남기지 않고 먹으려는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소포장을 넘어 아예 ‘컵과일’로 소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2030대가 주로 방문하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데, 올들어 지난 20일까지 편의점 CU에서 컵과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2.3%, 세븐일레븐에서는 30%, GS25에서는 10% 이상 늘어났다. 소용량 과일 소비는 기존에 1·2인 가구 확산에 따라 늘었는데 올들어선 기후플레이션으로 한층 탄력을 받았다. 주부 김 모씨(51)는 “오이와 파, 양배추 가격이 올라 장보기 빈도를 작년보다 30% 정도 줄였지만, 장을 아주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상해서 버리지 않을 양이 얼만큼인지 고민해보고 소용량으로 파는 과일과 야채 구매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체는 기후플레이션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 유통업체 대표는 “2분기 고객 방문이 다소 줄어든 반면 인플레이션 폭이 훨씬 커서 매출은 외려 좀 늘었다”며 “이런 식으로는 매출의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 신선식품 상품기획자(MD)들은 신규 재배지 발굴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폭염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재배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롯데마트는 양파의 신규 산지로 충남 홍성과 경기 안성, 전북 고창을 개발했다. 기존 전남과 경북에서 생산된 양파가 고온과 우천 영향을 받게 되면서다. 올해 양파 출하량 중 신규 산지 구성비는 20%로 전년 대비 5%포인트 상승할 전망이다.

마트 3사는 장마와 폭염에 강한 상품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마트는 올해 타이벡 자두 물량을 전년 대비 20~30% 확대 운영한다. 타이벡은 과수 아래에 설치하는 반사 필름으로, 과수에 햇빛을 골고루 받게 하면서도 수분 흡수를 억제한다. 과일 당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복숭아는 비가 와도 품질과 당도가 떨어지지 않는 딱딱한 ‘아삭 복숭아’ 품종을 지난해보다 20%가량 확대할 예정이다. 하우스 를 비롯한 시설과 스마트팜을 활용한 과일 재배도 늘리고, 과거엔 상품성이 떨어졌던 못난이 과일(B급 과일) 판매도 활발하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이마트 국산 과일 판매대를 고객이 지나치고 있다. 이날 여러 할인 행사를 진행했음에도 고객들은 국산 과일을 카트에 담는 데 오랜 시간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박창영 기자]
전문가들은 기후플레이션에 따른 소비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중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후플레이션은 농축수산물과 외식, 가공식품 물가에 한꺼번에 영향을 준다”며 “코코아와 커피 같은 원재료는 일부 국가에서 전 세계 소비량의 3분의1을 대는 경우도 있어 전 세계 공급망 차질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가 식생활을 당장 바꾸는 데는 한계가 크다”며 “기후에 따라 작황을 관리하는 능력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