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의료공백 126일, 전공의는 응답하라
의대정원 확정에도 의정갈등은 여전
서울대병원 집단휴진 중단은 분기점
의료계 단일창구에 대화 재개 기대감
전공의는 복귀해 필수의료 논의해야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공백이 23일로 126일째다. 넉 달이 넘는 기간 의료 공백이 지속되며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 지쳐가고 있다. 집단 휴진에 들어갔던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닷새 만에 중단하고 의료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의료 공백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의정(醫政)이 사직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과 의대 정원 증원 등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비판 여론에 추진 동력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의료계는 여전히 집단 휴진을 무기로 정부와 맞서고 있다. 지치다 못해 분노한 환자들은 다음 달 4일 1000명이 넘는 인원이 거리로 나온다.
국민들은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집단 휴진 중단을 계기로 의정 갈등이 마무리되고 의료 공백이 정상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의정 간 대화의 문이 조금씩 열릴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구심점이 없던 의료계는 의정 갈등 이후 처음으로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에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를 꾸렸다. 의대 교수, 지역 의사회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다. 전공의 단체와 의대생 단체가 불참을 선언했지만 범의료계의 의견을 모을 단일 창구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정부도 연일 “조건 없이 만나 대화하겠다”고 강조하는 만큼 조만간 만남이 성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126일 동안 의정이 평행선을 달린 것은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며 맞섰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이 의료계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며 원점 재검토만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내년도 의대 정원이 포함된 2025학년도 대학 입시 요강이 확정됐다. 의료계가 의대 정원 증원 절차가 문제 있다며 제기한 행정소송도 대법원에서 정부의 최종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제 적어도 내년도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기도 되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럼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는 듯하다. 올특위는 22일 첫 회의를 비공개로 열고 정부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해 논의해야 한다며 기존 의료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집단 휴진에 대해서도 입장이 바뀐 게 없다고 했다. 과연 대화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의정 갈등을 끝내려면 정부와 의료계가 일단 만나야 한다. 만나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견도 좁힐 수 있다. 의료계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한 대화의 문이 열려도 논의가 진전되기 어렵다. 특히 의협은 극단적인 주장만 되풀이해왔다. 오죽하면 의료계에서도 의협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왔을까. 5월 취임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불필요한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전공의 대표로부터 “뭐하는 사람인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전공의 대표와 벌인 설전이 언론에 생중계되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의협 산하에 출범한 올특위도 회장이 배제된 채 구성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넉 달이 넘는 의료 공백 기간, 다행히도 전공의 없이 병원은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비상 의료 체계가 정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하루라도 빨리 환자와 국민을 볼모로 한 의정 갈등, 승자 없는 싸움을 끝내야 한다. 정부도 대화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의 집단 휴진은 어떤 명분과 주장에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집단 휴진이 여론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닷새 만에 막을 내린 것이 그 증거다.
이번 의료 공백 사태의 시작과 끝은 전공의다. 의정 모두 전공의 복귀에 힘을 모아야 한다.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하면서 ‘몸을 갈아서 의료 현장에서 일해왔다’고 주장했다. 의대 교수들을 향해서도 ‘착취 사슬의 중간 관리자’라며 날을 세웠다. 이제는 장외에서 비판과 방관만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내년도 의대 정원도 확정됐고 이제는 그들이 주장해온 필수 의료를 어떻게 보강하고 바꿔나가야 할지 대화할 시간이다. 전공의들은 응답하라. 가운을 벗은 의사들은 더 이상 의사가 아니다.
김정곤 기자 mckid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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