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

이오성 기자 2024. 6. 24.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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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집했던 삼성전자에서 노동자들이 연차 투쟁을 통해 파업을 벌였다. 지금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사상 초유의 단체행동까지 일어난 것일까.
전국삼성전자노조 집행부와 조합원들이 6월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 섰다. 맨 왼쪽부터 김종년 조직국장, 박성훈 대의원, 손우목 위원장, 김수지 대의원, 임하나 조합원, 이현국 부위원장, 이태윤 사무국장, 허창수 부위원장, 노형진 대의윈.ⓒ시사IN 신선영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삼성전자 창사 55년 만에 발생한 ‘최초의 파업’이다. 국내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글로벌 대기업 삼성전자의 파업 소식을 크게 다뤘다. 반세기 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집해온 삼성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6월7일 벌어진 파업 수위는 ‘저강도’였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조합원들은 징검다리 휴일인 이날 연차휴가를 내는 방식으로 파업에 나섰다. 전삼노는 이번 파업을 조합원 자율 참여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파업 참여 인원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부 현장 생산부서 전체 직원이 연차를 내는 등 사용자 측(사측)이 압박을 느낄 만큼의 단체행동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신경영 선언’을 한 지 3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보수 성향 언론과 경제신문들은 이번 파업을 앞두고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연봉 상위 4%’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선언(〈조선일보〉)’ ‘억대 연봉 삼성 노조 “月10만원 더 달라” 몽니(〈매일경제〉)’ ‘반도체 위기인데 사상 첫 노조 파업…삼성전자, 경영 악화 심화하나(〈이투데이〉)’. 돈 잘 버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회사 사정도 아랑곳 않고 단체행동에 나섰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파업을 이끈 전삼노는 삼성전자 내 최대 노동조합이다. 한 달에 1만원씩 조합비를 내는 이가 2만8000여 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직원 약 12만5000명 가운데 22%를 차지한다. 반도체 사업을 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노동자가 전삼노의 주축이다. 복수노조 체제인 삼성전자에서는 모두 5개 노조가 활동 중인데, 최대 규모인 전삼노가 사측과 대표 교섭권을 갖고 있다.

전삼노의 조합원 수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무려 1만8000명이 노조에 추가로 가입했다. 사내 게시판에서는 노조 가입 ‘인증’도 이어졌다. 글의 주제와 상관없이 제목에 ‘노가완(노조 가입 완료)’이라는 말을 붙이는 릴레이를 이어간 것이다. 신규 조합원 대다수는 ‘2040’ 젊은 노동자라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지금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노조 가입 열풍에 이어 사상 초유의 단체행동까지 벌어졌을까.

그간의 언론보도는 노사 간 단체교섭을 둘러싼 단편적인 사실관계 설명에 그친 것이 대다수였다. 그동안 삼성전자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몇 가지 쟁점을 통해 살펴보자.

■ 이미 많이 버는 노동자들이 왜 싸우지?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많이 버는 것, 맞다. 2023년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평균 급여는 1억2000만원이었다. 전년(1억3500만원)보다 11.1% 감소했다. 전년보다 줄었다고 해도 직장인 평균 연봉(2022년 기준 4214만원)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매우 악화했다. 연봉이 크게 줄게 생겼다. 성과급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통상 매년 1월 삼성전자 직원에게 초과이익 성과급(OPI)이 지급되는데 올해 DS 부문은 0%, 즉 ‘0원’이었다. 반도체 사업 부진 탓이다. 2014년 OPI 제도가 시작된 이후 DS 부문에 0%가 책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설치한 파업 선전차량. ⓒ시사IN 신선영

OPI는 소속 사업부의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매년 한 차례 지급한다.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에는 당연히 이런 성과급이 포함돼 있다. 올해 성과급이 0원이 되면서 직원 연봉이 평균 30% 정도 줄게 됐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단순 계산하면 30%가 삭감될 경우 평균 연봉은 86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간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19년간 설비 개발 쪽에서 일했는데 현재 연봉이 7000만원 초반대”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 직원의 급여는 고과제도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달리 책정된다.

반면 갤럭시 스마트폰 사업의 호조로 삼성전자 내 MX(모바일 경험) 부문은 연봉의 최대 5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같은 삼성전자 직원임에도 손에 쥐는 급여 차이가 이토록 컸다. 일부 경제 매체에서조차 이 같은 내부 격차가 직원들의 불만을 키울 수 있다며 염려한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단순히 연봉 하락 때문만은 아니다. 방아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임원과 직원의 격차다. 삼성전자 DS 부문 임원 역시 OPI는 직원과 마찬가지로 0원이다. 그런데 임원들에게는 ‘장기 성과 인센티브(LTI, 롱텀 인센티브)'라는 제도가 따로 있다. 매년 산정하는 OPI와 달리 ‘최근 3년’ 실적을 평가해 산정한다.

3년 실적을 따지는 만큼 호황기였던 2021년, 2022년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임원들에게는 1인당 수억 원대 LTI가 지급됐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임원 대상 LTI 지급액은 2592억원이었다. 특히 같은 시기 임원들에게 LTI를 지급하기 위해 쌓아둔 충당금이 3899억원에 달했다. 노동자의 임금은 30%나 깎였는데, 임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열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회사가 이익이 나지 않는데 성과급을 달라는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동자더러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경영 악화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은 성과급을 가져가는 현실에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임원들의 성과급은 개별적인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전삼노 조합원 수가 폭발적으로 불어난 이유는 성과급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젊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노조 측은 설명한다. ‘임원은 임원, 직원은 직원’ 식으로 분리해 생각했던 과거 인식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 노조가 6.5%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대다수 언론보도는 이랬다. 단체교섭 과정에서 사측이 5.1%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으나, 노조가 6.5%를 요구하며 교섭이 결렬돼 파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 측 설명에 따르면 맥락이 사뭇 다르다. 논의 과정에서 6.5% 이야기가 나온 것은 맞지만, 최종 요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삼노 집행부는 휴가 제도 등 다른 쟁점이 해결되면 5.1% 인상안에 합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협상 과정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노조가 마치 1.4%포인트 추가 인상(월 10만원 정도)을 고집해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처럼 사실관계가 왜곡됐다는 설명이다. ‘월 10만원 더 달라 몽니’ 같은 기사는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6.5%’ 수치가 나온 배경에 대한 〈시사IN〉의 질의에 삼성전자 사측은 “임금인상률 6.5%는 2024년 임금복리후생 7차 본교섭 회의록을 통해 노조에서 공개한 내용으로, 언론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보도한 것으로 추정되나, 회사가 정확한 경위를 알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회의록은 조합원에게만 공개했다”라고 밝혔다.

‘임금인상’은 노조의 여러 요구 중 하나일 뿐이다. ‘최우선’ 요구라고 보기도 어렵다. 5월24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벌어진 집회의 슬로건 중 하나도 “임금인상 6.5%가 아닌 노동 존중 실천을 요구한다”였다. ‘노동 존중’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도 있다.

6월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조 간부가 회사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지난 3월 전삼노가 참여한 삼성전자계열사노조연대는 눈길을 끄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수행한 ‘삼성-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계열사 소속 18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는 심각했다. 근골격계 질환 유증상자 비율이 81.4%로 임금노동자 평균(38%)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제조 생산직군과 광주사업장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질환 의심자’가 35%를 넘었다.

우울 증세를 느끼는 노동자 역시 절반에 가까웠다. 회사별로는 삼성전자 45.8%, 삼성전자서비스 46.4%, 삼성전자판매 69.5%, 삼성SDI 46.7%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인 우울장애 유병률 7.7%를 크게 상회한 수치다. 수면장애 비율 역시 일반인 평균보다 2.5배에서 3.7배까지 높았다. 특히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사업장별로 9.2~16.7%에 달해 충격을 주었다.

발표 이후 삼성전자는 해당 조사가 사실을 왜곡했다며 반박 입장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직원들을 상대로 한 건강검진 결과(와 비교해) 많게는 10배가량 수치를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밝혔지만 따로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해당 조사를 보도한 언론사는 9곳인 데 비해, 삼성전자의 입장을 보도한 언론사는 37곳이었다.

조사를 수행한 이들은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건강상태 뒤에는 성과(실적) 압박과 그에 따른 고과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매직은 물론 공장에서 일하는 제조 노동자도 성과에 따라 인사고과를 받는다. 앞선 조사에서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판매 노동자(각각 86.6%, 92.9%)뿐 아니라, 삼성SDI(64.7%)와 삼성전자(68.8%) 노동자도 성과 압박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모두 절반이 넘는 수치다.

노조는 특히 2022년부터 도입한 ‘동료평가 제도(peer review)’를 문제 삼는다. 동료평가 제도(익명, 서술형)는 부서장 주도의 평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인데, 동료 간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동료평가 도입 이후에도 부서장의 고과 평가 권한은 여전히 존재한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동료와 부서장 모두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반올림 측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고과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 왜 정현호 부회장을 타깃으로 삼았나

단체교섭 결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단체교섭도 결렬됐다. 조정 신청을 거쳐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했지만 지난번에는 파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삼성전자 노조의 이번 단체행동에는 임금 등 그동안 누적돼온 쟁점이 쌓여 있었다.

초유의 파업 돌입 계기에는 휴가 확대 문제가 있었다. 2024년 단체교섭을 진행하면서 삼성전자 노사는 2023년 단체교섭도 병합하기로 합의한다. 원칙대로라면 2023년과 2024년 단체교섭은 각각 따로 진행해야 한다. 2023년 결렬된 교섭을 마무리한 뒤, 그 내용에 맞춰 다시 2024년 단체교섭을 진행해야 한다. 사측으로서는 노조와 2년치 단체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교섭 재개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한 발 양보하고 병합 제의를 받아들였다. 대신 병합의 조건으로 ‘휴가 제도 확대’를 사측으로부터 약속받았다. 1년에 기본 15일인 유급휴가를 더 늘린다는 내용이다. 협상장에 나온 사측 교섭위원들도 휴가 제도 확대에 적극적이었다는 게 노조 측의 전언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장 겸 부회장. 정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최측근이자 기업 내 실세로 알려져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교섭 도중 삼성전자 사측은 휴가제도 관련 논의를 갑자기 중단했다. 사측 교섭위원이 “서초에서 반려했다”라며 대화를 중단했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여기서 ‘서초’는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장 겸 부회장을 뜻한다. 사업지원 TF는 과거 삼성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던 미래전략실의 후신이다. 정현호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최측근이자 기업 내 ‘실세’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날 이후 노조의 투쟁 초점은 정현호 부회장으로 모아진다. 사내 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권한을 쥔 정 부회장이 노조와의 협상을 좌초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5월24일 집회에서 “정현호 부회장 나와라” 구호가 울려 퍼진 이유다. 파업 선언 전 열린 5월28일 협상에서 사측이 아무런 안건 없이 테이블에 나오면서 결국 다음 날인 5월29일 파업 선언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정현호 부회장이 단체교섭 과정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시사IN〉의 질의에 삼성전자 측은 “일방적 주장이므로 회사가 확인해드릴 내용이 없다”라고 밝혔다.

노조가 정 부회장을 비판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 부회장이 여러 실기를 거듭하며 삼성전자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공지능(AI) 구동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개발에서 뒤처진 점이다. 기존 반도체 시장에서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에 안주해 삼성전자가 HBM 개발을 게을리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5월21일 삼성전자는 결국 반도체 사령탑을 교체했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장에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전 SDI 대표이사)을 임명하고, 기존 경계현 사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앉혔다. HBM 대응 실패에 따른 인사조치라는 업계의 평가가 나왔다.

■ 회사가 어렵다는데 단체행동 해도 되나?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58조1600억원, 영업이익 6조5400억원을 기록했다(삼성전자 공시 자료). 2022년에 비해 매출은 14.58%, 영업이익은 84.92% 감소한 수치다. 매출에 비해 영업이익 하락 폭이 훨씬 컸다. 팔리기는 엇비슷하게 팔렸는데 이익을 못 봤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산업 불황 탓이 컸다. 코로나19 시기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반도체 수요가 주춤하고 그에 따라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익이 줄었다. 앞서 말했듯 인공지능(AI) 구동에 필요한 HBM 개발에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뒤진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20년 5월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2년 전까지는 괜찮았다. 2021년의 경우 매출 279조6000억원을 달성하면서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세웠고, 영업이익도 51조6300억원으로 역대 세 번째였다. 2022년에도 매출 302조2300억원으로 기록을 경신했고, 영업이익도 43조3800억원으로 역대 네 번째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실적도 괜찮았다. 4월30일 발표된 1분기 영업이익은 6조606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매출도 12.82% 늘어났다. 반도체 사업 부문(DS) 영업이익도 1조9100억원을 기록했다. DS 부문의 흑자 전환은 2022년 4분기 이후 다섯 분기 만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여전히 돈이 많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미처분 이익잉여금(사내 유보금)은 145조6519억원이었다. 2021년(122조2506억원) 대비 18.8%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였다. 사내 유보금은 기업이 법인세까지 납부하고 남은 순이익 가운데 투자나 배당 등으로 쓰지 않고 사내에 쌓아둔 이익을 뜻한다.

삼성의 진짜 위기는 앞서 말했듯 신기술 분야에서 보인 대응 실패를 만회할 수 없을 때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뉴욕타임스〉는 전삼노의 파업 소식을 보도하면서 한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려 이렇게 썼다.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매우 존경받는 기업이었고, 수십 년 동안 선두를 지켜왔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 리더십을 잃었다. 노조 파업은 그들이 현시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노조는 왜 노사협의회 선거에 출마했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 5월 두 차례나 머리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라는 말과 함께 이 회장이 강조한 것은 ‘노사’ 문제였다.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지난 ‘무노조 경영’ 기간 동안 삼성에서 노조 구실을 대신해온 곳이 있다. ‘노사협의회’라는 이름의 기구다. ‘근로자참여법’에 따라 만들어진 이 기구는 해마다 전 직원의 임금인상률을 결정해왔다. 문제는 이재용 회장의 ‘무노조 경영 사과’ 이후에도 노사협의회가 여전히 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사측이 제안한 임금인상률 ‘5.1%’ 역시 올해 3월29일 사측과 노사협의회가 합의한 사항이다. 노조는 노사협의회가 임금수준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며 반발했다.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노조의 대체 기구로 활용할 수 있는 이유는, 전삼노가 전체 직원의 ‘과반’을 포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 중 약 22%가 소속한 전삼노는 사내 최대 노조로 대표 교섭권을 가지고 있지만, 과반에는 미달한다. 여기서 노조에 속하지 않은 비조합원을 누가 대표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고용노동부는 ‘노조가 없거나 소수 노조일 경우 비조합원의 근로조건에 대해 비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다’라는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다. 노사협의회의 권한을 인정한 해석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노사협의회가 과반에 미달하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로자참여법은 ‘노조의 단체교섭이나 그 밖의 모든 활동은 이 법(근로자참여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는 노사협의회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과거 노사협의회가 삼성 측의 노조 와해 전략으로 거론된 전례도 있다. 2013년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에는 ‘노사협의회 전략적 육성 및 활용’을 통해 ‘노사위원 후보를 발굴하고 유사시 친사 노조로 전환활 수 있도록 역량을 제고’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그림〉 참조). 2016년 대법원은 이 문건이 삼성그룹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최종 인정했다.

삼성전자 측은 노사협의회 운용과 관련해 “회사는 노동부 행정해석 등에 따라 적법하게 비조합원의 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노사전략) 문건은 약 10년 전에 이미 공개된 것으로, 회사가 해당 내용을 전략으로 활용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번 쟁의행위 과정에서 전삼노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노사협의회를 아예 ‘접수’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전삼노 집행부와 대의원 등 10여 명이 화성·기흥·평택·구미 등 사업장 6곳에 근로자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전삼노가 최대 조합원을 확보한 만큼 당선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6월14일께 나올 선거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 노사관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씨가 5월24일 전국삼성전자노조 집회에서 무대에 올랐다. 이날 집회에는 노조 추산 2500여 명이 참석했다.ⓒ연합뉴스

5월24일 서초동 삼성사옥 집회는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 가수 에일리, YB밴드 등이 무대에 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랜 무노조 경영으로 노조 활동에 소극적이라고 여겨졌던 삼성전자 노동자 2500명(노조 추산)이 얼굴을 드러내고(마스크를 쓴 이들도 있었다)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연단에 오른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뜻밖의 인물을 거론했다. 평생을 노동문제 상담가로 살아온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였다. 이현국 부위원장은 “노동 3권을 공부하면서 왜 헌법이 주위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파업까지 허락했는지 궁금했는데, 하종강 교수께서 답을 주셨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수많은 급여 소득자에게 한 달에 50만원의 추가금이 지급된다면 그 돈이 어디로 갈까요? 결국 소비와 지출을 통해 사회에 환원되게 돼 있습니다. 내가 좀 더 나은 보상을 받음으로써 우리 지역 경제를 윤택하게 합니다. 이것이 노동운동을 하는 당연한 이유입니다.”

2024년 6월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첫 번째’ 파업을 벌였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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