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24시]북·러조약과 또 하나의 질서충돌
푸틴, 美의 ‘이중 기준’과 ‘규정에 기초한 질서 강요’ 비판
러북, ‘다극화된 세계 질서’ 구축 선언
한미, 핵공유협정 체결, 전술핵재배치 목소리 커질 듯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이중기준’과 ‘규정에 기초한 질서 강요’를 강하게 비판하고 ‘다극화된 세계질서 구축’을 선언함으로써 미중전략 경쟁과 함께 또 하나의 질서충돌의 전선을 구축했다. 서방의 제재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북한이 ‘한전호’에서 공동전선을 폄으로써 북핵문제 해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와 북한이 ‘신냉전’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주창한 것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패권질서’를 거부하고 반서방진영의 단합을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는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있다. 집권 5기를 맞아 푸틴 대통령은 중국, 북한, 베트남을 차례로 방문하고 다극화된 세계질서 수립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냉전 구도’에 의존하여 생존을 모색하던 북한은 중국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러시아와 밀착하여 장기생존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G2국가로 부상한 중국은 서방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제 각도 발사 등 전략도발을 억지하며 글로벌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북러조약 체결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는 보다 강화된 ‘공포의 균형’이 이뤄졌다. 한미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맞서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미 핵협의그룹(NCG)를 가동하는 등 확장억제력의 실행력을 높여 한미 우위의 공포의 균형을 잡았다. 이번에 북한이 북러조약을 통해서 사실상 러시아의 핵우산을 제공받음으로써 한미 대 북러의 공포의 균형을 이뤘다. 러시아의 북한 핵개발 두둔과 핵우산 제공, 첨단무기개발 지원 등과 관련해서 많은 우려가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한반도 핵 균형이 전면전쟁을 억지할지도 모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과 동맹조약을 맺고 있는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일정한 선을 넘지 말 것을 경고했던 한국정부는 북러조약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정부당국자가 공언했던 대러시아 레버리지가 작동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일정한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한국이 북한에 침략계획이 없기 때문에 러북 협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를 타격하는 정밀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낸다면 북한에 무기를 공급하겠다”며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검토에 맞불을 놓았다.
푸틴 대통령이 다극화된 질서 구축을 내세울 정도로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핵 강국으로써 전략적 지위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나라들에게 핵공격을 할 수 있다며 서방의 손발을 묶어두고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 이란의 드론무기 등을 지원받아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핵을 가진 ‘전략국가’ 북한이 러시아 핵우산으로 핵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어, 미국과 한국에서 핵공유협정 체결과 전술핵재배치, 한국의 독자핵개발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정훈 (yunright@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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