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돈 군사 사육 의무화…양돈산업 후폭풍 클것”
합사때 유산 늘어 생산성 저하
기존 농가 설치비 부담 크게 늘어
돼지고기값·물가 상승 영향 우려
2030년부터 임신돈에 대한 군사(群飼·무리로 사육)공간 제공을 의무화한 정책이 양돈산업의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양돈업에 동물복지 개념이 적용되면서 사실상 스톨(철제 고정틀) 사육이 제한돼 생산성 저하와 비용 증가 등 부작용이 업계 내부에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 “임신돈 스톨 사육 제한 생산성 저하 동반할 것”=“임신돈 스톨 사육을 제한하고 군사 사육하면 생산성이 증대된다고요? 천만에요. 오히려 양돈산업에 큰 위기를 불러올 겁니다.”
18일 서울 서초구 제2축산회관에서 만난 신일식 유로하우징 대표는 “임신돈을 군사 사육해보니 스톨 사육보다 생산성이 10% 이상 하락했다”면서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무시 못할 수준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27년간 무창돈사(창이 없는 돼지농장)를 전문적으로 설계·준공해온 신 대표는 정부 축사 표준설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업계 최고 전문가로 손꼽힌다.
2021년에는 전남 진도에 유로팜을 세워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농장 설립 당시 임신돈 군사공간을 직접 설치해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보통 양돈농가는 인공수정 등을 통해 모돈이 임신하면 분만사로 옮기기 전까지 임신스톨에서 사육한다. 반면 군사 사육은 교배 후 6주 정도가 지나면 임신스톨에서 군사공간으로 옮겨 다른 돼지들과 합사하는 방식이다.
신 대표에 따르면 현재 군사 사육을 적용한 유로팜의 생산성은 관행 농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32마리의 모돈을 종부(교배) 후 스톨 사육했을 때 분만율은 평균 90% 이상이다. 하지만 현재 유로팜의 분만율은 75∼78%에 불과하다. 모돈 32마리를 종부하더라도 24∼25마리만 출산한다는 얘기다.
신 대표는 “생산성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임신돈을 합사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투쟁’ 때문”이라며 “돼지의 본능적인 서열 싸움으로 유산 발생이 많아졌고, 다친 임신돈의 도태율도 크게 높아져 생산성이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존 스톨 사육농가는 군사공간 설치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얘기다.
신 대표는 “우선 임신돈 도태를 대비해 후보돈을 구입해야 하는 비용이 추가된다”며 “더욱이 모돈 200마리 규모 농장을 기준으로 구조 변경과 설비 교체에 따른 비용은 최소 1억∼2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군사공간 설치로 모돈 한마리당 사육면적이 기존보다 20%가량 넓어져 결국 사육마릿수가 줄어드는 것도 농가에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임신스톨 사육 제한 2030년부터 시행…유럽 후폭풍 심각=국내에서 임신스톨 사육 제한은 2030년부터 모든 농가에 적용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9년 12월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해 동물복지 차원에서 농가들이 임신돈을 사육할 때 반드시 군사공간을 제공하도록 해 임신스톨 사육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신규 농가는 2020년 1월부터 군사공간 제공이 의무화됐고, 기존 농가는 2029년 12월31일까지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문제는 한국보다 앞서 임신돈 스톨 사육을 제한한 국가들에서 심각한 생산성 저하와 함께 산업 위축 현상이 관측됐다는 점이다. 실제 1999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임신스톨 사육을 금지한 영국은 현재 양돈산업 붕괴를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은 “1997년 80만마리 수준이던 영국 모돈 사육마릿수가 2023년 30만마리 수준으로 하락했고, 전체 돼지 사육마릿수 또한 약 400만마리 감소했다”며 “이같이 큰 타격은 1999년 영국 정부가 임신스톨 사육을 제한하고 파운드화 환율이 폭등하면서 농가수가 반토막 났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생산자단체에선 임신스톨 사육 제한이 생산성 저하와 밀접한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세희 대한한돈협회장은 “동물복지 정책으로 생산비가 상승하면 돼지고기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모든 농가에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동물복지 정책은 결국 물가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시설현대화사업 관련 자금을 집행할 때 임신돈 군사 농가에 우선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농촌진흥청 등과 협력해 축사 개보수 매뉴얼 제공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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