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따위 없었던 김도영, 괴물 류현진 상대로 20-20 달성… 이제 MVP 향해 달린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KIA는 물론 향후 KBO리그를 이끌어 나갈 대형 선수로 뽑히는 김도영(21·KIA)은 올해 시작부터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해 APBC 대회에 출전했다 손가락을 다쳤던 김도영은 재활로 시즌 출발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부터 대질주를 벌이며 힘을 냈다. 잘 치고, 멀리 뛰고, 잘 뛰었다. 만능 선수의 표본이었다.
ABS존 적응 기간이 끝난 4월부터는 도루는 물론 홈런포까지 터져 나오며 기록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4월 한 달 동안 홈런 10개와 도루 14개를 기록하며 KBO리그 역사상 월간 10홈런-10도루를 동시에 달성한 첫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김도영의 방망이는 거침이 없었다. 4월 16일까지 5개의 홈런을 친 김도영은 4월 17일 SSG전에서 홈런 두 방을 때리며 ‘월간 10-10’의 가능성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이어 4월 21일 NC전에서 4월 8번째 홈런을 쳤고, 4월 23일 키움전에서 9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월간 10-10’에 대한 이야기가 커질수록 선수가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고전하는 ‘아홉수’를 어떻게 넘길지도 관심사였다. 하지만 김도영에게 아홉수 따위는 없었다. 4월 24일 키움전에서 안타 2개를 치며 타격 컨디션을 이어 간 김도영은 4월 25일 키움전에서 기어이 월간 10번째 홈런을 때리며 대기록에 마침표를 찍었다. 8~10호 홈런이 4경기 만에 나왔다. 기록을 의식하면 슬럼프가 길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김도영은 서둘러 기록을 마무리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대 투수들의 집요한 변화구 대응에 다소 고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긴 슬럼프라고 할 만한 시기는 없었다. 홈런은 나오지 않아도 타율은 꾸준하게 관리가 됐다. 5월 이후 최저 타율이라고 해봐야 0.323이었다. 장타는 물론 언제든지 내야 안타를 만들 수 있는 능력 또한 타율 관리에 도움이 됐다. 김도영은 5월 세 개의 홈런에 그치며 홈런 페이스가 살짝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공격 생산력은 잘 관리했고 변화구 승부에 적응한 뒤인 6월부터는 또 폭발하기 시작했다.
김도영은 6월 16일 kt전에서 시즌 17호 홈런을 터뜨리면서 전반기 ‘20-20’ 달성이 기대감을 모았다. 역시 아홉수를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김도영은 이 고비를 빨리 넘기고 한결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김도영은 6월 20일 LG전에서 시즌 18호 홈런을 기록했고, 6월 21일 한화전에서 시즌 19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인 6월 23일 한화와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때리며 개인 첫 20-20 클럽에 가입했다. 두 번의 대기록 모두 아홉수 없이 달성했다. 어린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관록과 폭발력이다.
이날 더블헤더 제1경기 상대 선발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 투수인 류현진(37·한화)이었다. 첫 타석에서는 류현진의 절묘한 바깥쪽 제구에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다음 타석인 4회 류현진의 전매특허인 체인지업을 제대로 잡아 당겨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총알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20번째 홈런이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아무리 과거보다 위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한 두 번 봐서 넘길 수 있는 공은 아니다. 하지만 김도영의 적응력은 그 이상이었다.
김도영의 20-20은 만 21세 8개월 21일에 이뤄졌다.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20-20을 달성한 선수가 됐다. 기록은 김재현(당시 LG) 현 SSG 단장이 신인 시즌인 1994년 달성한 것이다. 이 최연소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쉽지 않은 기록으로 평가되는데 당시와 지금의 리그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김도영의 대단함을 실감할 수 있다. 73경기 만에 20-20을 달성한 김도영은 경기 수에서도 이병규(68경기), 박재홍(71경기)이라는 전설적인 선수들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단순히 달성 날짜만 보면 역대 1위다.
KIA에서 20-20 클럽은 총 11번이 있었는데 김도영이 이 기록의 명맥을 이었다. 가장 근래 달성자는 외국인 선수였던 로저 버나디나(2018년)이었고, 가장 근래에 달성한 국내 선수는 김도영의 롤모델로 자주 비교되는 이종범(2003년)이었다. KIA 국내 선수로는 김도영이 21년 만에 20-20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전반기에 일찌감치 20-20을 달성한 만큼 이제 30-30을 향한 기대감이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KBO리그 역사상 30-30 달성 사례는 단 8번이다. 박재홍이 세 차례 달성해 달성자로만 따지면 6명(박재홍 이종범 홍현우 이병규 데이비스 테임즈)에 불과하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는 이종범 홍현우만 달성했다. 홍현우는 1999년 이 기록을 달성했고, 김도영이 타이거즈 선수로는 21세기 첫 기록 달성을 노린다. 23일까지 김도영은 20홈런-22도루를 기록 중이고, 산술적인 페이스는 38홈런-42도루 정도다. 부상만 없다면 30-30까지는 무난하게 갈 것이라는 전망은 무리가 아니다.
30-30 달성이 리그 최우수선수(MVP)의 보증 수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근래 거의 달성 사례가 없었던 30-30을 달성한다면 표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종범 박재홍 등의 경우 하필 달성 시기에 KBO는 물론 아시아 홈런 기록을 향해 달렸던 이승엽이라는 거대한 산이 존재했다. 다만 가장 근래 30-30 달성자이자 내친 김에 유일무이 40-40까지 달렸던 에릭 테임즈(2015년)는 MVP를 차지했다.
김도영은 현재 각 타격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어 다관왕도 노려볼 수 있는 페이스다. 김도영은 23일 현재 타율 6위(.341), 득점 1위(71개), 최다 안타 3위(101개), 홈런 공동 2위(20개), 타점 공동 10위(56개), 장타율 2위(.608), 출루율 11위(.402), 도루 7위(22개), OPS 2위(1.010) 등 다양한 부문에서 상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스포츠투아이’가 집계한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도 3.54로 야수 중에서는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팀 성적이 좋은 것도 MVP 투표에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 KBO리그에 김도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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