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멍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김윤진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2024. 6.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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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쉰다’는 것은 벗어나는 것이다. 일에서 떠나는 것이다.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쉬면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늘어지고 자세가 흐트러진다. 자유로워진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자신을 만난다.

오늘날 우리는 힘들게 산다. 온전한 휴식이 어렵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도 일을 걱정한다. 내일을 걱정한다.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직전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퇴근 할 때 쯤 자기 일을 시작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는 동안 일을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하루를 보낸다. 시간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자영업자도 자유롭지 않다. 다 퇴근한 후에 일과 함께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은 여전히 일터이다. 하루종일 일한다. 과로한다

소박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의 삶도 힘들다. 이전에 두 사람이 하던 일을 이제는 혼자서 한다. 할 일이 많다. 벅차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해야 한다. 쉬고 싶지만 대신할 사람이 없다. 피로한 채로 하루를 끝내고, 피로가 덜 풀린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 든 사람은 나이든 사람대로 열심이다. 대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다. 여유 체력을 남겨놓지 않는다. 일이 끝났을 때 녹초가 된다. 일상에 지친 자신을 본다.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일 만은 아니다. 세상이 평화롭지 않다. 사람들이 항상 성나있다. 논쟁이 많다. 일방적인 주장이 난무한다. 저마다 옳다. 옳고 그름이 뒤죽박죽이다. 쉽게 편이 나뉜다. 자주 난처한 처지에 있게 된다. 울퉁불퉁 얽혀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기는 힘들다. 그래서 힘든 사람이 있다. 병을 얻기도 한다.

발달된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홍수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너무 많은 정보가 지치게 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빠르게 일어난다. 뒤처질까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너무 많은 선택권이 결정 장애를 일으킨다. 상실감에 빠지게 한다. 한 순간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불안이 병을 일으킨다.

여름이 와도 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쉬어도 피곤한 사람들 중에서는 지친 사람이 많다. 힘들어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피곤하다. 그 상태로 일하고 힘겹게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검사를 해도 별 큰 이상이 없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전염병 과식 운동부족만이 아니다. 오늘에 와서는 다른 것이 한 몫 한다. 무리한 일정, 첨예한 갈등, 너무 많은 자극, 그런 것들이 아프게 한다. 잘 먹어도 소용없다. 운동해도 소용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가득 채운다. 반복되는 불안과 우울이 되어 건강을 해친다.

요즘 우리 삶은 너무 힘들어졌다. 열심히 노력해야 살아갈 수 있다. 일상이 복잡해졌다. 모두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고 있다. 번번이 어쩔 수 없는 난처한 지경에 노출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심한 갈등을 하고,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피할 수 없다. 힘들어도 온몸으로 헤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많은 병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오늘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어떤 날에는 진짜 쉬어보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내보자. 머리 속을 텅 비우고 온전한 자신을 만나보자. 긴장을 완전히 풀고 뒹굴뒹굴 하루를 보내보자. 전화도 끄고, 카톡도 끄고 지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보자. 아무 생각없이 있어보자. 행복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열린 부산은 그러기에 참 좋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다가 있다. 멀리 수평선에서 바다가 하늘과 만나고 있다. 사람들이 파도를 타고 논다. 해변에는 뜨겁고 기쁜 마음이 출렁거린다. 멍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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