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퍼터’로 승기 잡았다
3타 차 선두로 맞이한 13번 홀(파3). 김민규(23)는 아이언 티샷이 그린 왼쪽으로 날아가자 ‘아차’ 했다. 물에 빠진 줄 알았다. 그런데 공은 물보라를 한 번 튀기더니 뭔가에 맞고 기적처럼 러프로 튀어나왔다. ‘물수제비샷’이라 불리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는 1벌타를 피한 뒤 두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리고 파로 막아내며 한숨을 돌렸다. 최경주 골프 장학생 출신인 김민규는 “(지난달) SK텔레콤오픈에서 최 프로님이 아일랜드에서 살아남으며 최고령 우승을 차지했던 순간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민규가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 컨트리클럽(파71)에서 열린 코오롱 제66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4억원·우승 상금 5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 66타를 적어내 최종 합계 11언더파 273타로 2위 송영한(33)을 3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22년 이 대회 우승 이후 2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으며 통산 3승째를 올렸다. 지난 2일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에 이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시즌 첫 2승을 거뒀고 상금 1위(7억7200만원)와 대상 포인트(3926점) 1위로 올라섰다. 국내 최고액인 우승 상금 5억원과 더불어 7월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에서 열리는 디오픈 출전권을 받았다. 준우승자 송영한도 함께 디오픈에 나간다.
김민규는 이날 3라운드까지 선두 송영한에게 2타 뒤진 3위로 4라운드를 시작했으나 8번 홀(파5)에서 이글을 잡으며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홀까지 227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을 홀 3m에 떨어뜨리고 나서 이글 퍼트를 넣었다. 12번 홀(파4) 버디로 3타 차 선두로 달아난 다음엔 13번 홀에서 ‘물수제비샷’ 행운을 발판으로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뽑아내며 3타 차 완승을 확정했다. 장유빈(22)은 이날 6타를 줄이며 선두권을 추격했으나 강경남과 함께 공동 3위(7언더파 277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민규는 이번 대회에서 선배 최경주가 사용하던 퍼터를 들고나왔다. 그는 “2001년 출시된 구형 퍼터로 단종됐지만 내게는 보물과도 같다”며 “(최경주 프로의) 좋은 기운을 받는 것 같아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래전 물려받은 퍼터인데 올해 초반 일자형 퍼터를 찾아보던 중 차 트렁크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2020년 군산CC 오픈과 KPGA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이 퍼터를 사용한 바 있다. 한동안 다른 퍼터를 쓰다가 이 퍼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난달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오르고, 이달 초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는 그린 스피드를 4m로 조정해 또 다른 화제를 모았다. 2라운드에선 4.2m, 3라운드 4.0m, 마지막 날 4.1m로 맞췄다. 1라운드는 PGA 투어 평균 수준인 3.8m였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US오픈 그린 스피드가 평균 4.27~4.42m인데 한국오픈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을 선보인 것이다. 처음엔 선수들이 빠른 그린 스피드에 당황했다. 하지만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적응해 갔다. 베테랑 허인회(37)는 “무조건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고 코스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정윤 우정힐스 컨트리클럽 대표는 “지난해 대회가 끝나고 그린 컨디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린 스피드는 잔디 길이와 그린의 단단함, 수분 함량 등을 조절해 올린다. 그린 스피드를 내려면 잔디의 폭(예엽)과 잔디의 높이(예고)를 짧게 해야 한다. 평소 3.1~3.2㎜인 잔디 길이를 대회를 앞두고 서서히 낮추기 시작해 대회 기간 2.4㎜ 안팎을 유지한다. 대회 10일 전부터 질소 성분 비료를 주지 않아 잔디가 잘 자라지 않도록 관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회 기간에는 하루 두 번 잔디를 깎고(더블 커팅) 그린 표면을 단단하게 눌러주는 롤링 작업(500㎏ 장비)을 한다. 잔디 표면 경도를 유지하기 위해 수분 비율도 평소 10~12%에서 7~8%로 줄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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