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軍이 학살했다고 고쳐달라” 진실화해위에 이런 민원이... [기자의 시각]

서보범 기자 2024. 6.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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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산스퀘어에 마련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기의 모습. /뉴스1

이달 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고 한다. 6·25전쟁 때 부친이 인민군에게 학살됐다는 진실 규명이 확정됐는데,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군경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고쳐달라는 민원이었다. 6·25 74주년을 맞은 호국 보훈의 달에 걸려온 전화라고 믿기 어려웠다.

진실화해위는 과거와 화해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2005년 설립됐다. 6·25 당시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 등에게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 목적이다.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를 내걸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역사의 암흑기였기에 우리 군경에 의한 피해도 진실 규명과 배상의 대상으로 본다. 배상은 현재까지 5700여 건 집행됐다. 희생자 유족에게 평균 1억3000만여 원씩 지급, 8000억원 이상 예산이 들어갔다.

같은 기간 인민군과 빨치산 등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에 대한 국가 배상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공권력에 의한 희생과 달리 가해 주체가 북한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6·25전쟁 책임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작년 12월 수원지법은 적대 세력 희생자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인민군과 지방 좌익 세력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학살이 진행됐던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인민군 점령지에서 벌어진 행위에 대해서까지 국가의 보호 의무가 기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헌법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남로당과 우리 군경에 의한 피해자 모두에게 가해 주체를 가리지 않고 최대 9000만원씩 보상 및 배상하고 있다. 우리 정부 주권이 미치지 않았던 일제 때 희생된 이들을 독립 유공자로 지정해 기리기도 한다. 우리 정부가 일단 보상한 뒤 북한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여야는 “인민군 등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이라는 이유로 국가배상 소송에서 패소, 전쟁 희생자 피해 구제에 불균형이 발생한다”(더불어민주당 서영교, 국민의힘 김용판)며 보상심의위원회 등을 신설,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진실화해위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앞서 수원지법 재판부 역시 적대 세력 희생자에 대한 국가의 피해 회복 의무를 거론하면서도 관련 법이 미비한 상황을 기각 이유로 제시한 바 있다.

최근 만난 어느 종교인 희생자의 유가족은 “차라리 우리 군경에 의해 돌아가셨다면 추모도 받고 위로금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역사의 아픔을 대한민국이 먼저 어루만지고, 통일 이후 북한의 전쟁 책임을 철저히 묻고 구상권 청구로써 배상을 강제하는 조항을 명시하는 법률을 국회가 입법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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