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사라졌다” 악명 높은 그 비행기 때문에 [사이공모닝]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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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어디로 가시나요?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1분 1초가 아쉬운, 귀한 시간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여름휴가 중 31시간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린다면, 참을 수 있으신가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지난 1일 무안공항에서 베트남 다낭으로 갈 예정이었던 비엣젯항공의 항공기가 31시간이나 지연된 것입니다.
경위는 이렇습니다. 1일 오후 8시에 다낭으로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수리를 하면서 출발 시각이 총 4차례나 미뤄졌습니다. 비행기만 뜨면 곧바로 출발할 마음으로 인근 숙박업소에 머물며 기다리던 고객 221명 전원은 결국 탑승을 취소했습니다. 이 비행기는 승객을 단 한명도 태우지 않고 돌아갔지요. 말이 31시간이지, 여름휴가 자체를 망쳐버린 거죠. 생각만 해도 화가 납니다.
비엣젯항공은 지연과 결항 문제로 악명이 높습니다. 대체 항공기가 부족하고, 항공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는 저가항공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최근 국내 항공사인 티웨이 항공도 오사카행 비행기가 11시간 이상 연착되는 사건이 벌어져 난리가 났었죠.
◇늦고, 사라지고... 악명 높은 저가 항공사
비엣젯항공은 베트남 최대 민간 항공사입니다. 2014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비엣젯은 현재 인천~하노이·호찌민·다낭 등 8개 노선과 부산~호찌민·하노이·달랏 등 15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인기 관광지 직항 노선이 많은데다가 저가 항공사라는 점 때문에 시간과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외국계 항공사도 비엣젯이었습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 포털시스템에 따르면 비엣젯의 올해 1분기 누적 여객 수는 76만895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54% 증가했습니다. 외항사 중 1위이죠. 베트남 국영 항공사인 베트남 항공(4위·34만4063명)보다 이용 여객 수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푸꾸옥 직항 노선을 하루 3회나 운행하고, 냐짱·달랏 등 관광지 직항 노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을 찾으려면 비엣젯 외의 대안이 딱히 없기도 하지요.
문제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연착과 결항이 잦다는 겁니다. 이는 국제선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베트남 국내에서도 비엣젯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지요. 지난 2022년 베트남 교통부가 “연착·결항 항공편이 급증하면서 많은 승객이 공항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며 “계속해서 지연 및 취소된 항공편의 수가 많은 경우, 다른 나라와 유사한 방식으로 항공 운항을 중단해야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베트남 점유율 1위 항공사인 비엣젯의 항공 면허를 취소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베트남 교통부가 항공편 지연 문제로 경고 문서를 보낼 만큼 고객 민원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지요.
◇베트남 관광 수요 늘며 가격도 높아져
베트남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베트남 하늘이 ‘차량정체’를 겪는 것도 베트남 가는 항공편들이 줄줄이 밀리는 이유입니다. 텅 빈 하늘에 차량 정체가 벌어지다니 무슨 일인가 싶지만, 베트남에서는 항공기가 일시적으로 몰려 착륙 신호를 기다리는 비행기들이 공항 위를 빙빙 돌며 대기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만큼 착륙이 늦어지죠.
문제는 지연과 결항 같은 불편 사항이 늘어나는데도 계속 오르는 가격입니다. 5년 전만 해도 비엣젯 같은 저가 항공사의 장점은 지연이나 결항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상쇄할 만큼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호찌민이나 하노이까지 30만~40만원 정도면 갈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국적기와 가격 차이가 크지도 않습니다. 올해 여름 휴가철 항공편을 알아보니 비엣젯도 항공권 가격이 70만~80만원대였습니다. 베트남과 한국의 거리가 갑자기 멀어진 것도 아닌데 항공권 가격이 2배 이상으로 비싸지니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가격이 올라도 관광객은 몰려듭니다. 올해 1~5월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 이상 늘어난 760만명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도 많은 숫자였지요. 국가별로는 한국이 195만2000명으로 1위를 차지했고, 중국(160만5000명), 대만(52만9000명), 미국(35만명), 일본(28만9000명)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경쟁 없는 게 문제?
베트남의 항공기 부족은 내년 말까지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당장 이번 여름 휴가철을 맞아 야간 운항을 늘려보고 있지만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요. 국영 항공사 베트남 항공이 엔진 문제로 항공기 11대를 운항하지 못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비싸진 항공권 가격에 VN익스프레스 같은 현지 언론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냅니다. “항공권 가격 인상은 단순히 세금과 수수료 문제가 아니라 다른 항공사와 경쟁하지 않는 베트남 항공 업계의 문제”라는 것이죠. 사실상 베트남 항공 시장은 일반 항공사인 베트남 항공과 저가 항공사인 비엣젯 항공 두 업체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항공기 확충이나 가격 인하 경쟁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여전히 저가 항공이 일반 항공사보다 가격 측면에서는 저렴한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운항 시간대와 노선이 다양한 만큼 여행 스케줄에 맞춰 항공편을 정하기도 좋죠. 저가 항공사만 이런 문제를 겪는 것도 아닙니다. FSC라 불리는 일반 항공사들에서도 연착과 결항 문제가 생기곤 하죠. 그러니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죠.
어쨌거나 직장인에게 휴가는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 불가피한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1년을 손꼽아 기다려 온 휴가가 어그러지는 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돈으로 배상 받는다 해도 그 상실감을 채울 순 없겠지요. 이제 슬슬 휴가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모두의 여행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완벽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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