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온도 36.5℃①] 패러다임 대전환, 기로에 선 사회적기업

허주열 2024. 6.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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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자생력 제고' 16년 만에 지원책 대전환…현장 혼란

정부가 16년간 지속한 '육성' 위주의 사회적기업 지원 정책을 '자생력 제고'로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은 대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픽사베이

영리(營利)를 얻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직체. 국어사전에 소개된 기업의 사전적 정의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적기업'도 있다.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도 제정돼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특히 올해부터 예산이 대폭 삭감돼 사회적기업은 기존과는 다른 생존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정부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라는 사회적기업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기업으로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 패러다임을 '획일적 육성'에서 '자생력 제고'로 전환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23~'27)'의 핵심 내용이다. 2007년 1월 3일 제정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근거로 16년간 이어진 육성 위주의 정책에 힘 입어 사회적기업은 2007년 55개에서 3737개(2023년 기준)로 급증했다. 사회적기업의 전체 고용 인원수는 6만2312명이며, 이중 취약계층 고용 인원수는 3만6605명(58.7%)에 이른다.

하지만 현 정부의 사회적기업 정책 패러다임 대전환에 이은 예산 대폭 삭감으로, 취약계층에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던 기존 사회적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정부 "획일적 육성 정책 결과 다양한 부작용 발생"

정부는 사회적기업 지원 패러다임 전환 및 예산 삭감의 근거로 "직접 지원 중심의 획일적 육성 정책 결과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인건비 중심 재정 지원으로 사회적기업이 정부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원금 부정수급 사례도 지속 발생하고 있으며 △정부 지원 의존도가 높아 자생력과 국민 인지도를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지난 16년간 육성 위주의 지원 정책을 펼친 결과 문제가 많아서, 정부 지원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제16조 2항)에 의거해 사회적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사회적기업가의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매년 7월 1일로 정해진 기념일인 '사회적기업의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사회적기업 활동이 어려워진 것은 예산 삭감도 있지만,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 기업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 탓도 크다"며 "지원금을 부정하게 수령한 사례는 1.1%에 불과한데 그것을 부각시켜 침소봉대했고, 그러면서 사회적기업들이 갖고 있던 사회적 관계망이 훼손된 측면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회적경제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 등 13개 부처의 사회적경제 사업 예산은 총 4851억원으로 전년(1조1120억) 대비 56%가량 삭감됐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사회적기업이 근로자를 채용할 때 지원하는 인건비를 내년부터는 일절 지급하지 않기로 하고, 관련 예산을 '0원'으로 편성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해 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사업 예산은 753억원으로, (예비)사회적기업 신규 고용 근로자 6360여명의 인건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올해를 끝으로 인건비 지원이 끊기면 신규 고용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예산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예산의 대폭 감소는 관련 분야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줄어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간 인건비·창업비 등 현금성 지원 중심의 지원 정책은 사회적기업 수 증가 등 양적 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정부 지원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고용 유지, 사회적기업 진입 저조 등 사업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다"며 "판로, 역량 강화 등 자생력 강화 중심으로 지원 패러다임을 전환했으며, 이 과정에서 현금성 지원 사업이 폐지됨에 따라 관련 예산이 대폭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사회적경제가 일찍 활성화된 선진국도 대부분 일반 기업과 동일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향후 정부는 사회적기업이 자생력을 갖추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판로, 역량 강화, 지역네트워크 형성 지원 등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상 민간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는 현실은 인정하고 있지만, 이제는 지원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세종시 고용노동부 전경. /더팩트DB

정부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의 특성상 민간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는 현실은 인정하고 있다. 연장선에서 그간 정부는 인건비 등을 직접 지원하면서 사회적기업을 육성해 왔는데, 앞으로는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우선 구매, 세제 지원 등 다양한 간접적 지원으로 바꾼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올해부터 전국 19개 성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사회적기업 진입을 위한 인·지정 컨설팅 및 성장 지원을 위한 인사·노무·회계 등 컨설팅과 지역 네트워크 형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사회적기업 총 3021개소가 참여한 가운데 135회 교육을 지원했고, 컨설팅 76회, 경영진단 667회 지원을 했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또한 R&D, 마케팅, 판로 등 경영컨설팅 등 전문 컨설팅 제공을 위한 용역업체 선정이 마무리되는 7월 이후 컨설팅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사회적기업 자생력 확보에 핵심적인 판로 지원 강화를 위해 공공 구매 편의성 등이 개선된 '차세대 판로 플랫폼' 구축 및 지역 자원을 활용한 특화 상품 발굴·상품화 지원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사회적기업 지원기관 활동가 200여명 이상 현장 떠났다"

현장에선 16년간 이어온 '육성' 지원 위주의 정책을 갑자기 '자생력 제고'로 방향을 틀고, 예산을 대폭 줄이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기업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관련 시행령에 따라 이 기업들은 △장애인 △가구 월평균 소득이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의 60% 이하인 사람 △고령자 등 취약계층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근로자로 기용해 사회적 목적에 따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판매하다 보니 일반 기업과 같은 수준의 이익을 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재찬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상임이사는 "정부 방침이 바뀐 이후 지방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통합지원기관 활동가들 200여명 이상이 해고돼 현장을 떠났다"며 "현장을 떠난 이들과 연계된 사회적기업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회적경제조직은 취약계층을 주로 근로자로 기용하기 때문에 생산성에 있어서 최소 20~30% 일반 민간 기업 대비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데, 여기에 생산한 재화나 상품을 경제적인 취약계층에 20~30%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최소 40% 이상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알아서 자생을 하라는 것은 사회적 가치와 목적을 위해 정부가 짊어져야 할 짐을 사회적기업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사회적경제 정책 및 예산 삭감 평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뉴시스

그러면서 하 이사는 "사회적 가치와 목적을 위한 경제활동을 하는데 40% 이상의 리스크를 해당 기업이 감당하라는 건 사회적 측면에서 적합하지도 않고, 이들이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라며 "취약계층 인건비 지원 종료는 앞으로 추가적인 고용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지원금이 올해 내 종료되면 사회적기업 대부분이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사회적기업이 취약계층에 제공한 사회 서비스 감소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안전망에도 리스크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인건비 등 현금성 지원 사업 폐지로 인해 일부 사회적기업이 경영상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4차 기본계획이 발표된지 반년에 불과해 아직은 패러다임 전환이 모두 구현되진 못했지만, '자생력 제고를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 실현'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들도 다수 있다. 앞으로 4차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사회적기업의 정책 방향을 토대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게 판로·투자유치·역량 제고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모색·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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