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미국은 왜 러시아 로켓 엔진을 우주선 발사에 활용하나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4. 6. 2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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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지난 6월 5일 미국 보잉사의 유인 우주선 스타라이너가 오랜 시도 끝에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미국은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에 이어 사람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두 개의 수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전 사람을 달에 착륙시킨 미국이 한동안 유인 우주선이 없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 보잉사의 스타라이너를 실은 미국의 우주발사체 애틀러스V의 메인 엔진이 러시아 엔진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정작 자국 로켓에는 러시아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우주 산업 생태계를 위해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했던 미국의 고민이 있다.

인간을 달에 보낸 아폴로 계획은 천문학적 예산이 소모되었다. 결국 미국은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보낸 초대형 발사체 새턴V 로켓을 포기한다. 대신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이 개발되었다. 재사용 발사체는 이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새턴V 로켓의 엔진을 만든 제조사 로켓다인(Rocketdyne)의 생산이 끊기지 않도록 우주왕복선의 엔진 제작도 맡겼다. 오랜 개발 기간 끝에 탄생한 우주왕복선은 미국 과학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잦았다. 114회 비행에 703명의 우주인이 탑승해서 무려 14명이 사망했다. 2022년 기준 항공기 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가 100만 명당 0.16명이니, 우주왕복선은 인류가 만든 이송체 중 가장 사망률이 높다는 오명을 얻게 된다.

이에 미국 정부는 우주왕복선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것이다. 먼저 발사체 엔진 RD-180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한다. RD-180은 일론 머스크가 극찬할 만큼 빼어난 성능을 자랑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했다. RD-180을 주력 엔진으로 개발된 발사체 애틀러스III 로켓이 2000년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후속 발사체 애틀러스V에도 사용되었다.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논쟁거리였던 우주왕복선이 2011년 퇴역하자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낼 우주인도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맡겼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 기업을 우주 산업에 참여시켜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가 RD-180의 미국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오히려 미국의 민간 우주 기업에 더 기회가 열리게 된다. 먼저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가 나섰다. 러시아 엔진에 의존하는 발사체를 대체해야 한다며 스페이스X의 발사체 팰컨9 로켓의 수요를 확대해 나갔다. 그는 거침이 없었다. NASA의 기술이전을 받아내 2020년 팰컨9 로켓으로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성공시킨다. 한동안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의존하던 미국은 거의 10년 만에 다시 유인 우주선을 확보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RD-180 엔진을 사용하지 않는 발사체 개발에도 착수했다. 이렇게 애틀러스V의 후속으로 만들어진 로켓이 불칸(Vulcan)이다. 여기에도 민간 기업을 참여시켰다. RD-180을 대체할 불칸의 메인 엔진 BE-4는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의 민간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이 만들었다. 2024년 1월 불칸은 첫 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그동안 미국은 러시아 제재를 강화했지만 RD-180의 수입은 계속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러시아는 더 이상 RD-180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은 많은 숫자의 RD-180을 사둔 상태라 향후 몇 년간 러시아 엔진 RD-180을 사용하는 애틀러스V 로켓은 계속 발사될 예정이다.

2016년 포브스지는 미국이 러시아 제재를 추진하면서도 러시아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요지는 자국 산업이 다양한 발사체와 엔진이 개발될 수 있도록, 특히 제조 생태계를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폴로 우주선을 달에 보낸 새턴V 로켓의 엔진을 제조한 회사 로켓다인은 아폴로 계획 종료 후에는 우주왕복선의 엔진을 만들었고, 여전히 미국 정부의 다양한 발사체 엔진을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이 다시 달에 가려는 아르테미스 계획에 사용될 엔진도 생산할 예정이다. 정부 주도로 핵심 제조사들의 생산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사이 우주 민간업체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이 성장했고, 심지어 경쟁 관계를 형성하며 강력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작년 스페이스X는 무려 98회 로켓을 발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스페이스X의 예상 매출 약 150억달러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억달러가 스타링크의 위성 서비스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우주산업에서 발사체 비중은 고작 1.5%이고, 위성 서비스 시장 규모가 30%가 넘기 때문에 스페이스X는 지속적으로 스타링크 사업을 확대했다. 발사가 많아질수록 제조 단가는 내려갔고, 저비용으로 위성을 쏠 수 있는 스페이스X가 위성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스페이스X는 우주산업의 마중물이 발사체임을 증명한 것이다. 발사체 제조 원가는 당연히 발사 횟수에 반비례한다.

우리나라 발사체 누리호는 2021년, 2022년, 2023년 매년 1회씩 발사했지만, 4번째 발사는 많이 미뤄지고 있다. 이렇게 제조의 연속성이 끊기면 발사 비용은 의미가 없어진다. 왜 미국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까지 자국의 우주 산업 제조 생태계를 유지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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