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윤심 타령’도 ‘어대한 타령’도 다 걷어치우라
그들만의 한 줌 당권 쟁투 돌입한 與
망가진 ‘보수의 가치’ 되살리지 못하면
차라리 당 간판 내리라는 비판 직면할 것
그런데 지난 총선 때 민심의 호된 회초리, 아니 몽둥이를 맞은 국민의힘은 참패의 기억을 벌써 잊은 듯 그들만의 당권 쟁투에 돌입한 모습이다. 당대표 선거는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한동훈(가나다순) 등 4파전 구도로 좁혀졌다. 이재명 대표를 다시 추대하는 식의 ‘체육관 선거’를 치르게 될지도 모를 민주당에 비해선 생동감이 돌게 됐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기류도 있지만 1차에서 끝날지, 결선 투표까지 갈지, 1, 2위 표차가 어느 정도일지, 3위가 캐스팅보트를 쥘지, 그 표는 어디로 갈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율이 20% 반영되는 ‘8 대 2’ 경선룰이 어떤 마법을 부릴지 속단하긴 쉽지 않다.
친윤이냐 비윤이냐 반윤이냐, 당권에서 대권으로 직행할 것이냐, 그 경우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1년 2개월 뒤 사퇴하는 것이냐 등 여러 구도와 변수가 얽히면서 경선 자체는 일단 흥행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4명의 후보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보수 재집권의 성공” “당정 원팀” “대통령 견인” “이기는 여당” 등 외침의 공허함이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보수의 궤멸이란 말이 나올 정도의 위기 속에서 자신들이 왜 당대표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출사표인지 의문이란 얘기다. 이는 각 후보들의 학벌이나 판검사 출신 등 직업, 경제력 등이 갖는 계급성 때문만은 아니다. 망가진 보수의 가치, 보수의 앞날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을 예고하기보다는 당내 역학 구도에 따른 줄 세우기 양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4명의 후보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한 전 위원장일 것이다. 어대한 얘기가 나올 만큼 현재로선 당원이든 일반 국민이든 지지율이 앞서고 있지만 정치에 입문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정치 초보다. 그의 당대표 도전은 그만큼 본인으로선 미지의 정글 속으로 뛰어드는 모험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였으나 총선을 거치면서 반윤의 처지로 바뀐 한 전 위원장은 이번에 나서지 않으면 고사(枯死)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다. 총선 실패의 아픈 기억을 대권 승리로 상쇄하고 싶다는 야심도 있을 것이다. 그의 도전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지만 “글쎄” 하며 긴가민가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은 우선 원내 경험이 없는 원외 대표로서 어떻게 국회의원들을 지휘할지, 한솥밥을 먹었던 윤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더 본질적으론 그의 준비다. 국가 지도자는 거칠게 말하면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는 비전, 둘째는 이를 실행할 경륜, 셋째는 국민 지지다. 비전과 경륜은 이성의 문제이고 국민 지지는 감성의 문제다. 그는 팬덤은 있지만 아직 어떤 보수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 보여준 적이 없다. 법무장관을 지냈지만 독자적으로 차곡차곡 쌓은 경륜이라고 하긴 어렵다. 변방이나 비주류 생활을 해본 경험도 일천하다. 정치 리더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는 건 자유지만 그에 걸맞은 내면적 성찰이 동반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대 도전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딱 한 번의 승부가 될 것이다. 이재명에 맞설 ‘꿩 잡는 매’ 여론에 기댈지, 그 이상의 잠재력을 보일지는 오로지 그의 몫이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조국 이준석에 한동훈까지 당대표를 하게 되면 사면초가에 놓이는 형국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의힘 경선에 개입하고 싶은 욕구도 클 것이다. 그러나 용산 입김은 없어야 하고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젊은 보수를 지향하든, 천막 당사의 정신을 가져오든 보수 혁신, 보수의 질적 전환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 비전 경쟁이 펼쳐지도록 경선에서 일절 손을 떼야 한다.
한 달의 경선, 윤심 타령도 어대한 타령도 다 걷어치우라. 또다시 친윤이니 비윤이니 반윤이니 하는 프레임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국민의힘은 차라리 문 닫는 게 나을 것이라는 냉소와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번 전대가 허물어진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는 ‘희망의 이벤트’가 될까, ‘절망의 이벤트’가 될까. 보수 혁신의 담론 없이는 국민의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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