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그림이란… 안 그린다고 생각하면 숨이 안 쉬어지는 거”[월요 초대석]

신광영 논설위원 2024. 6. 23.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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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명 얼굴 그린 다운증후군 화가 겸 배우 정은혜
차가운 시선에 오랜 고립… 마주앉은 이들 그리며 세상 밖으로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니까”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후에도 국내외 전시 열며 왕성히 활동
장애인 향한 편견 줄인 공로로 최근 ‘포니정 영리더상’ 수상
화가 겸 배우 정은혜 씨가 19일 경기도 양평의 작업실에서 잠시 붓을 내려놓고 뜨개질을 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9일 정은혜 씨(34)와 만나 악수를 하는데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느껴졌다. 지난 8년간 5000명이 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손이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 씨는 화가이자 배우다.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영희)를 연기했다. 캐리커처 작가인 그는 이후에도 국내외에서 전시를 열며 왕성히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포니정재단이 젊은 혁신가에게 주는 ‘포니정 영리더상’을 수상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프로바둑기사 신진서 9단 등이 받은 상이다.》



● “얼굴 그리는 게 좋아요. 사람들은 다 다르니까”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은혜 씨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뜨개질을 하며 휴식 중이었다. 파란색 실로 목도리를 짜고 있었다. “우빈 오빠 주려고요.” 은혜 씨는 함께 드라마 촬영을 했던 김우빈 배우와 가끔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했다. 뜨개질은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은혜 씨에게 외로움을 달래준 오랜 친구다. 요즘도 틈틈이 뜨개질을 해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은혜 씨가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이던 2016년부터다. 주말에 북한강변에서 열리던 야외 벼룩장터 ‘문호리 리버마켓’에 노점을 두고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손님을 계속 앉아 있게 하진 못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고 그렸다. 여름에는 뙤약볕을,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종일 그렸다. 손등은 부르트고 손가락엔 굳은살이 박였다. 그렇게 5000여 명의 얼굴을 그려 왔지만 은혜 씨는 요즘도 손님을 만나는 게 설렌다고 한다. “저는 얼굴을 그리는 게 좋아요. 사람들은 다 다르잖아요.”

노점에 찾아온 손님과 은혜 씨의 대화는 보통 이렇게 시작한다.

“여기서 그림 그려주시나 봐요?”

“네. 니 얼굴.”

“저 예쁘게 그려주세요.”

“아유 뭘… 지금도 예쁘면서.”

‘니 얼굴’은 은혜 씨와 가족들이 운영하는 노점 이름이다. 반말처럼 들리는 이 세 글자가 손님들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킨다.

● 사람들 시선 피해 자기만의 동굴로

은혜 씨가 캐리커처 작가로 변신한 지금을 그의 부모는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모 때문에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던 은혜 씨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상처가 깊어져 자신을 무심코 보는 시선마저 공격적이라고 느껴 과민 반응하는 ‘시선 강박’도 생겼다.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자신만의 동굴에 고립되어 가는 은혜 씨를 지켜만 봐야 했다.

“당시 딸의 휴대전화 통화료 고지서가 왔는데 기본요금 외에 추가요금이 0원이었어요. 뭔가 잘못된 줄 알고 통신사에 전화했더니 사용량이 ‘0’이라는 거예요. 단 한 통도 전화가 올 데도, 전화를 걸 데도 없었던 거죠. 스물두 살 아가씨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서 눈물이 났어요.”

사춘기의 은혜 씨는 방에 틀어박혀 낙서를 하거나 뜨개질로 시간을 보냈다. 외출하고 온 날에는 상상 속의 친구들을 한 명씩 불러내 소리를 지르며 밖에서 겪은 불쾌함에 대해 화풀이를 했다. 은혜 씨는 그때의 마음을 이런 시로 남겼다.

‘난 외롭다. 두렵다/나 같은 장애로 왜 태어났을까/괜히 낳아 보네. 괜히 나왔다/나는 외톨이야. 놀 친구가 없다/내 인생이 너무나 힘들다/내가 죽으면 참 좋았을 걸 안다/그래도 쉬고 싶다/울 때는 울어야 한다/기쁠 때는 기뻐야 한다’(나는 왜 그랬을까 中)

●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눈을 맞추다

“2013년 2월 27일. 제가 처음 그림 그린 날.”

은혜 씨는 11년 전 그날을 날짜까지 기억했다. 현실 씨가 딸의 소질을 알아본 날이기도 했다. 미대 출신 만화가인 현실 씨는 당시 생계를 위해 화실을 열었고, 집에만 있던 은혜 씨도 화실로 나오게 해 청소를 시켰다. 하루는 학생들 틈에서 그림을 따라 그리는 은혜 씨를 보고 잡지 속 여자 향수 모델을 그려보게 했다.

“은혜 씨가 그린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얘한테 이렇게 좋은 게 있었다니…. 장애인 딸로만 봤지, 뭔가를 하려는 욕구가 있고, 잘하는 게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어요. 저조차도 은혜 씨에게 내재된 힘을 보지 못했던 거죠.”(현실 씨는 딸을 ‘은혜 씨’라고 부른다. 관공서 등에서 성인인 은혜 씨를 자립 능력이 없는 아이처럼 대하는 걸 보고 자신부터 호칭을 바꿨다고 한다.)

그날 이후 현실 씨는 화실 구석에 딸을 위한 책상을 마련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늘 목말라했던 은혜 씨에게 “네가 해결하지 못한 사람을 그려보라”고 했다. 은혜 씨는 가족이나 연예인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연필을 들면 저녁까지 놓지 않았다. 그림에 몰입하면서 가상 친구들을 소환해 대화처럼 들리는 혼잣말을 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제가 종일 외출했다가 저녁에 화실로 돌아온 날이었어요. 은혜 씨가 불도 안 켜고 창가로 들어오는 붉은 노을빛에 의지해 둥근 어깨를 구부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뭔가가 북받쳐 오르더군요.”(현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은혜 씨는 그림을 시작한 지 3년쯤 된 2016년 가족들과 집 근처에서 열리던 문호리 리버마켓에 구경을 갔다. 사람이 많으면 움츠러들곤 했던 은혜 씨가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했다. 타인의 눈빛이 늘 두려웠던 그였지만 그림을 그려 달라며 마주 앉는 손님들의 눈은 자신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8월 은혜 씨는 ‘니 얼굴’ 노점을 차렸다. 코로나19 기간을 빼고 5년 가까이 거의 매주 노점을 열었다. 아침잠이 많은 은혜 씨는 주말 아침만큼은 맨 먼저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덥거나 추워서 나가기 싫었던 적 없어요?”(기자)

“전혀요.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니까.”(은혜)

● 틀리게 그려도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

보통 캐리커처는 인물의 장점을 부각하거나 귀엽게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은혜 씨의 그림에는 그런 고려가 담겨 있지 않다. 연예인이건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특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은혜 씨는 “저는 보이는 대로 그려요. 그냥 그게 다예요”라고 했다.

“한번은 군수님이 오셨어요. 좀 멋지게 그려 드리면 좋겠는데 은혜 씨가 그분 이빨이 다 쏟아지게 그려놨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이리저리 재는 게 없는 것 같아요.”(현실)

은혜 씨의 그림은 구도나 명암 같은 미술 공식과도 거리가 멀다. 현실 씨가 가끔 훈수를 둬도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참다못한 현실 씨가 스케치를 쓱쓱 지우고 고치기라도 하면 은혜 씨는 씩씩거리며 엄마를 째려본다.

“엄마가 조언을 하거나 고쳐주면 싫어요?”(기자)

“갱년기라 그런가 보다 해요. (웃음) 늙어서 그래, 늙어서.”(은혜)

현실 씨도 이제는 딸의 방식을 존중하기로 했다. “저처럼 정통 미술을 배운 사람은 틀리지 않는 그림을 그려요. 은혜 씨는 자기 멋대로, ‘틀리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그리거든요. 근데 결과물을 보면 완성도가 저보다 높아요. 제가 전문가라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면, 은혜 씨는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거죠.”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 씨와 포옹하고 있는 어머니 장차현실 씨(왼쪽). 프리랜서 만화가인 그와 은혜 씨는 자주 티격태격하면서도 정이 깊은 모녀지간이다. 은혜 씨는 “엄마처럼 오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그림을 통해 갖게 된 ‘마주 볼 용기’

‘열다섯 살인 나는 성형수술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고 싶다/마음도 감정도 달라지면 좋겠다. 성격도 날씬해지면 좋겠다.’(되돌아졌으면 좋겠다 中)

은혜 씨가 어릴 적 쓴 시 중에는 외모로 인한 열등감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을 표현한 글이 많다. 늘 내 안의 끼를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거울을 보고 나면 세상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림은 그에게 성형수술 없이도 사람들과 마주 볼 용기를 줬다.

“은혜 씨를 따뜻하게 보는 눈빛들이 은혜 씨를 살린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잖아요. 제 눈에 딸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딸을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진 거 같아요.”(현실)

은혜 씨는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이후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곧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포옹전’ ‘정은혜와 친구들’ ‘반려견 지로의 초상화’ 등 전시를 이어오며 요즘도 하루 10시간 정도 캔버스 앞에 앉는다. 강연 요청도 많다고 한다.

“요즘 은혜 씨 알아보는 분들 많아요?(기자)

“아유, 골치 아파요. 그놈의 인기.”(은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기자)

“글쎄요. 이미 다 이뤄졌는데.”(은혜)

은혜 씨는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 내내 짤막하게 답했다. 질문을 받으면 찬찬히 생각하다 옆에 앉은 현실 씨가 끼어들려고 할 때쯤 예상치 못한 한마디를 툭 내놨다. 이 질문은 답을 듣기까지 특히 더 오래 걸렸다.

“은혜 씨에게 그림이란 어떤 거예요?”(기자)

“음…. 만약에 안 그린다고 생각하면 숨이 안 쉬어지는 거.”(은혜)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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