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상훈]‘이대로의 사도광산’은 역사 모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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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에는 '사도(佐渡)를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유네스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는 사도광산에 등재 보류 권고를 내리며 "모든 기간(all periods)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현장(at the site level)에서 철저히(comprehensively) 개발할 것"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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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가타현에는 ‘사도(佐渡)를 세계유산으로 만드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다. 민간 조직이지만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는 사실상 관변단체다. 이곳은 지난해 등재 캠페인을 위해 2분 10초 분량의 응원곡과 동영상을 공개했다. 귀에 꽂히는 신나는 멜로디에 “뜨겁게 불타고 있는 마음, 반드시 그 꿈을 이룰 거야. 세계에 알리고 싶은 세계유산”이란 가사를 담았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와 사도광산 앞에서 젊은 남녀가 발랄하게 춤을 추는 쇼츠 영상도 있다. 지역민의 흥을 돋울지는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한국인이 보면 불쾌감을 넘어 모욕감마저 든다.
韓 자극하는 日 사도광산 캠페인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영상에 출연한 젊은이들은 니가타현 소재 2년제 전문대 ‘케이팝 엔터테인먼트과’ 학생들이다. 이 대학은 해당 모임 의뢰를 받아 제작한 음악과 영상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전국에서 케이팝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라는 홍보 문구까지 넣었다. 한국에 호감을 갖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일본 젊은이가 역사 왜곡에 동참하는(혹은 이용당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 은폐를 자행하는 일본 정부를 비난해야 하는 건지, 역사를 배우지 못한 무지한 젊은이들을 탓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자랑스러운 역사만 드러내고 어두운 역사를 감추는 건 일본의 오랜 수법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하시마) 해저 탄광 세계유산 등재 때도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산업 유산 정보센터’는 군함도에서 1000km 떨어진 도쿄 한복판에 건립됐고, 그나마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 사실은 제대로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희생자를 기리겠다고 했지, 꼭 현장에서 반성하겠다고 약속하진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유네스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는 사도광산에 등재 보류 권고를 내리며 “모든 기간(all periods)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현장(at the site level)에서 철저히(comprehensively) 개발할 것”을 명시했다. 이코모스가 올해 평가한 세계유산 후보지 36곳 중 이런 내용으로 권고를 내린 곳은 사도광산뿐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 끝내 역사를 비틀어 버린다는 걸 이코모스도 안다는 뜻이다.
역사를 기록하고 기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일본만큼 잘 아는 나라가 없다. 사도광산 입구에는 ‘무슈쿠진(無宿人)의 묘’라는 묘비가 있다. 에도시대에 집도 호적도 없이 대도시에서 떠돌이로 살다 끌려와 갱내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비다. 노숙자, 거주불명자에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비석을 세워주고 매년 넋을 달래주는 게 일본이다. 그런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며 강제로 끌고 온 조선인들은 명부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역사 성의 없이는 우호도 없다
사도광산 등재에 명운을 건 니가타현은 22일 ‘세계유산 등록 현민 회의 총회’라는 관변 행사를 열고 “오랜 염원 실현이 눈앞에 다가왔다”며 민관 총력 결집을 외쳤다. 국제기구 권고는 외면하고 단합대회만 열심히 열면서 자신들이 제출한 신청서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역사에 최소한 성의도 내비치지 않는 나라와 무슨 우호를 논하고 관계 개선을 꾀할 수 있을까. 반성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사실을 기록하라는 국제 사회의 요청이라도 제대로 이행하길 바란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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