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조선민족미술관’에 새겨진 마음
100년 전 경복궁 집경당에 개관
예술 매개로 평화로운 공존 염원
日민예관 특별전에 큰 뜻 오롯이
‘백자 청화 양각 모란무늬 베갯모’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다. 베갯모는 베개의 양쪽 끝에 대어 형태를 잡아주거나 장식하는 물건이다. 두 개가 한 세트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건 한 개다. 일본 도쿄 일본민예관에 거의 비슷하게 생긴 베갯모가 있다. 일본민예관은 이 두 개가 한 세트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1914년 노리타카가 선물한 도자기를 본 뒤 조선공예품의 매력에 흠뻑 빠진 야나기는 1920년 다쿠미와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계획했다고 한다. 도쿄가 아닌 경성에 세우고, 민족예술로서 조선 특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을 수집하기로 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조선인을 자극할 수 있는 기관이 되는 것도 희망했다. 설립 이전부터 야나기는 조선, 일본에서 전시회를 열어 조선 예술품을 알렸다. 1921년 도쿄에서 연 ‘조선민족미술전람회’는 “조선시대 미술과 공예를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전람회”였다. 이듬해 경성 황금정(지금의 을지로)에서 개최한 ‘이조도자기전람회’는 “조선 땅에서 열린 첫 조선도자기 전시회”라고 한다.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은 이런 흐름의 하이라이트로 보인다. 강연회, 음악회, 저술 등을 통해 얻은 자신의 수입을 내놓은 야나기를 비롯한 뜻있는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 백남훈, 김준연, 백관수와 기독교 지도자 조만식 등 조선인 후원자들이 힘을 합쳐 이룬 결과였다.
개관 당시 조선민족미술관은 조선시대 도자기를 중심으로 목공예품, 금속공예품, 회화, 조각 등 약 1000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1년에 두 번 전시회를 열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관람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공개했다. 관리는 경성에 거주했던 아사카와 형제가 담당했다. 개관 당시 전시실을 찍은 사진이 전하는데 지금은 일본민예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시품이 일부 확인된다. 일본민예관의 이번 특별전에서 관람할 수 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은 문을 닫았다. 노리타카가 해방 후 1년 정도를 더 머물며 소장품 정리를 맡았다. 처음엔 국립민족미술관으로 이관되었고,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으로 다시 넘어갔다. 6·25 중 일부가 손실되긴 했으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자 베갯모 한 쌍이 서울, 도쿄로 나뉜 사연은 1920년대 조선민족미술관 설립 구상, 각종 전시회 개최, 해방 후 소장품 정리 등으로 이어진 여정 속에 담겨 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도 한·일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기로 바랐던 바람은 있었다. 조선민족미술관에는 예술을 매개로 그 바람이 현실이 되기를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세기 전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되돌아보는 의미는 그 마음을 떠올리는 데 있지 싶다. 100주년 기념전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계기는 여러 가지다. 일본민예관은 야나기가 주도해 수집한 한반도 유래 유물 1600여점을 기반으로 상설·특별전을 연다. 야마나시현 호쿠토시에는 ‘아사카와 노리타카·다쿠미 형제 자료관’이 있다. 1931년 경성에서 세상을 뜬 다쿠미는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남산’이란 번호가 붙은 소장품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으로 옮겨졌던 조선민족미술관 소장품일지도 모른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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