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식칼럼] ‘워라밸 개혁’ 없이 출산율 반등 없다

2024. 6. 2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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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혁명 완수한 서구 국가들
여성 노동참여율·출산율 비례
韓, 일·가정양립제도 효과 미미
점진적 개선 넘어 파격 지원을

미국 사회학자 골드샤이더의 젠더혁명 이론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 진출은 두 단계의 변화를 거친다. 1단계에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로 결혼과 출산이 지연되어 출산율이 하락한다. 2단계에서는 여성의 노동참여와 출산 간의 관계가 약화되거나 오히려 역전된다. 서구 국가들은 이미 젠더혁명을 완수해 여성의 노동참여율이 높을수록 출산율도 높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젠더혁명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지난 수십 년간 20∼30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높아졌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한정된 시간을 육아와 경제활동을 위해 쪼개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은 취업 여성을 패닉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지나친 경쟁 사회는 ‘정상’ 육아의 기준을 끊임없이 높여 부모, 특히 여성에게 과도한 육아 부담을 지우고 있다. 여전히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는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도와주는 것’ 정도로 치부하며, 진정한 공동 육아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많은 취업 여성이 힘들게 쌓아온 경력을 포기하고 전업 육아를 선택하거나, 미혼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장
정부는 지난 20년간 거의 매년 일·가정양립 제도들을 개선해왔지만, 출산율은 2024년 0.6으로 예상되는 등 ‘저출산 수렁’에 더 깊이 빠지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공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 즉, 부모권이 보장되지 못한 결과이다. 노동권과 부모권이 모두 보장되지 않는 한 젠더혁명은 요원해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국가 인구 비상사태에 직면하여 점진적 개선을 넘어선 ‘일·생활균형(워라밸) 개혁’을 즉각 단행해야 한다.

개혁의 핵심으로 첫째, 일·가정양립 서비스 이용을 보편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제5의 사회보험제도로 일생활균형보험을 신설하여 임금근로자, 자영자, 특고용자, 비정규직, 실업자 등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부와 모에 일·가정양립 서비스 혜택을 제공한다.

둘째, 출산전후휴가(모성휴가)의 기간을 현행 90일에서 150일로 확대한다. 출산을 늦게 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시대에 맞게 모성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배우자 출산휴가(부성휴가)를 1개월 이상으로 연장하고, 사용을 의무화한다. 이는 아빠가 모성보호와 아동성장 발달을 돕고, 모의 육아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넷째, 육아휴직급여를 생활비, 물가 등을 반영하고 자녀 수에 따라 차등 지급하여 현실화한다. 임금대비 육아휴직급여의 비율을 높이고 상한액을 높여 육아휴직 동안 생활고를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공공부문과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육아휴직 사용률을 고려한 정원 및 현원 관리를 규정하거나 권고하여 육아휴직에 따른 인력대체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소기업에 대해 워라밸인력공단을 설립하여 근로자를 직접 파견한다.

여섯째, 유연근무제를 획기적으로 활성화한다. 예로 기업이 근로자에게 유연근무제를 제공한 시간에 비례하여 보조금을 지원한다.

워라밸 개혁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관련 법과 제도를 신속히 정비하고, 전담기구로서 일생활균형위원회를 설립한다. 기업은 일·생활균형이 생산성 향상과 지속가능한 노동력 및 소비자 확보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개개인이 일·생활균형을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추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서구 학계에서는 워라밸을 가장 성공적인 사회정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워라밸이 모든 생활영역에서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아, 진정한 의미의 젠더혁명을 이루고 출산율 반등의 토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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