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2色 연기 펼치는 30년 지기
죽음으로써 파국 부르는 중요 역할
희극적 캐릭터로 극중 숨통 틔워줘
광대같지 않게 질감 다른 웃음 노력
배우 초년시절부터 오랜 우정 쌓아
“박, 연기 욕심 강해” “남, 끈기 대단”
셰익스피어가 지은 4대 비극 중 첫 작품인 ‘햄릿’은 시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주인공 햄릿을 비롯해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당연히 극 중 분위기는 무겁고 스산하다. 그나마 이따금 긴장을 풀어주는 건 폴로니우스다. 클로디어스 왕과 거투르드 왕비가 신임하는 고문관이자 레어티즈와 오필리어의 아버지인데 희극적 인물로 그려진다. 햄릿의 칼에 찔려 죽을 때조차 그다지 안타깝게 보이지 않을 만큼. 하지만 그 죽음은 햄릿 추방과 오필리어 자살,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레어티즈의 분노를 유발하며 결국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죽고 마는 비극적 파국의 시발점이 된다. 폴로니우스 역을 가볍게 다뤄선 안 되는 이유다.
둘이 같은 역할을 맡아 번갈아 연기하는 건 지난해 연극 ‘오펀스’에 이어 두 번째다. “더블캐스팅은 선후배 누구랑 하든 미묘한 게 있어요. 상대방 연기에 대해 얘기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 좋습니다.”(남명렬) “경쟁한다는 생각 없이 연습과정을 함께해서 즐거웠어요.”(박지일)
30년이 넘은 막역한 친구답다. 각각 부산과 대전에서 연극을 하던 박지일과 남명렬은 1993년 서울 연극계로 진출한다. 당시 산울림소극장 예술감독이었던 채윤일 연출이 불러 박지일이 먼저 연극 ‘죄와 벌’로, 남명렬이 6개월 후 연극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으로 서울 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이후 몇 달간 한집에서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렇다고 성향이 비슷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박지일은 60대 나이에도 주인공 햄릿을 꿈꾸는 등 작품과 배역에 대한 욕심이 많고 도전적인 반면 남명렬은 기회가 주어지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쪽이다. 이런 특성을 ‘열정과 냉정’으로 비유한 남명렬은 “실제 저는 (대본 분석) 등 무대에서 이성적이고 냉정한 편이나 지일씨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열정적인 배우”라고 했다. 그러자 박지일이 “무대 연기는 뜨거움 속에 냉정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열정만 좇아가면 ×판 된다”면서 “나도 좀 이성적”이라며 웃었다.
이런 친구의 성향은 배우로서 부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배우는 적어도 ‘어떤 배역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없어요. 지일씨가 그런 욕망을 실현하려고 지금도 많이 배우고 노력하는데 저랑 달라요.”(남명렬)
“성실함 속에는 끈질긴 노력이 있는 겁니다. 배우는, 연극은 ‘이만하면 됐어’ 하고 놓지 않는 끈기가 중요해요. 지금까지 남명렬이 뭘 붙잡으면 놓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박지일)
대중이 찬사를 보내는 ‘메소드 연기’(배우가 배역 자체가 돼 사실적으로 연기하는 것)에 대한 입장은 “폐해와 단점이 훨씬 크다”며 둘 다 부정적이었다. 박지일은 “수많은 약속으로 이뤄진 무대에서 배우는 그 약속을 잘 수행하면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며 “연기는 속성 자체가 가짜다. 가짜임을 인식하고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명렬도 “무대에선 신들린 듯 연기해야지 진짜로 신들려선 안 된다”며 “그러면 무대 위의 모든 약속이 다 깨져버린다”고 거들었다.
신시컴퍼니가 이해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초연한 뒤 2022년에 이어 세 번째인 ‘햄릿’에 처음 출연한 이들은 햄릿 아버지이자 동생에게 살해당한 ‘선왕(유령)’ 역의 전무송·이호재(83)와 박정자(82·배우1 역), 손숙(80·배우2 역) 등 원로 대배우들과 한 무대에 선 것도 감격스러워했다. “연습 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들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정한 소리로 대사하는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단짝인) 전무송·이호재 선생님처럼 우리도 20년 후에 그렇게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공연은 9월1일까지.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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