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 휘말린 ‘아트센터 나비’…벗겨진 공익법인 민낯

최우리 기자 2024. 6. 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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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씨 관장 맡은 ‘아트센터 나비’
SK본사 빌딩서 소송 끝 쫓겨날 처지
공익법인, 총수일가 사적 용도 반증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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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과 배우자 노소영씨의 혼인 관계 파탄의 불똥이 그룹의 역사와 함께 한 아트센터 나비로 튀었다. 외관상 공익 등을 명분으로 그룹이 운영하는 비영리법인(공익 법인 포함)이 실제론 총수 일가의 사적 용도로 쓰인다는 일각의 비판이 ‘아트센터 나비’ 사례에서 여실히 확인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은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낸 퇴거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그룹 본사인 서린빌딩에 입주해 있는 아트센터 나비가 떠나는 게 맞는다는 판결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서린빌딩을 관리하는 에스케이 계열사다. 아트센터 나비가 에스케이이노베이션과 맺은 임대차 계약이 지난 2019년 9월 종료한 이후에도 퇴거하지 않는 건 무단 점유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본 것이다.

노소영씨가 관장을 맡고 있는 아트센터 나비의 전신은 ‘워커힐 미술관’이다. 최 회장의 모친인 고 박계희 여사가 본인 소장품을 바탕으로 1984년 5월 개관했다. 당시 미술관은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 컨벤션센터에 마련됐다. 노 관장은 박 여사 타계 직후 1998년 관장에 부임한 뒤 이듬해인 1999년 5월 아트센터 나비를 설립했다. 설립 당시 출연금(기부금·7억5천만원) 전액을 최 회장이 냈다. 에스케이그룹이 아트센터 나비의 뿌리였음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우산 역할을 해 온 셈이다. 다만 워커힐미술관의 애초 소장품은 최 회장이 상속했고 관리는 최 회장의 동생 기원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우란문화재단이 맡고 있다. 이와 별개로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담당 2심 재판부는 아트센터 나비가 공익법인이라는 점을 들어 소유권이 최 회장은 물론 노 관장에게도 없다고 판시했다.

21일 SK본사 서린빌딩 아트센터 나비 모습. 이날 법원은 서린빌딩을 관리하는 SK이노베이션이 아트센터 나비를 상대로 제기한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을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은 이혼 소송 중이다. 연합뉴스

소송에까지 이른 ‘퇴거 논란’은 아트센터 나비가 외관상 공익 법인이긴 하지만 사실상 그룹 총수 일가의 사적 소유물로 쓰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다. 총수의 이혼이 아트센터 나비의 운명을 가로지르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현재 에스케이 쪽은 워커힐 미술관과 아트센터 나비의 연속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번 퇴거 소송 역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혼인 관계 파탄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최 회장은 그의 동거인인 김희영씨와 함께 2018년께 티앤씨재단을 49억9900만원(누적 출연금 기준) 들여 만든 바 있다.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비영리 법인이 총수 일가 내부 갈등으로 풍파를 겪는 건 드물지 않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이하 나눔재단)은 비교적 최근 사례다. 한국앤컴퍼니는 나눔재단에 “한국타이어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소송을 지난 3일 제기했다. 나눔재단은 1990년 한국타이어그룹이 설립(출자금 30억원)한 공익법인으로 2018년부터 조양래 명예회장의 맏딸인 조희경씨가 맡아 운영해왔다. 하지만 조 명예회장에 이어 그룹 회장에 오른 조현범 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한국타이어그룹은 나눔재단에 대한 지원을 2022년에 중단한 바 있다. 이제는 ‘한국타이어’라는 브랜드도 쓰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나눔재단 쪽은 “(한국타이어그룹이) 사적 감정으로 인해 사업비 지원을 중단하고 (명칭) 삭제 요구를 해 온 것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간 재벌그룹들의 다양한 공익·비영리법인은 외관상 설립 목적과는 달리 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이제는 총수 일가 내부의 갈등으로 해당 법인들의 운영과 활동이 타격을 받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그간 공익·비영리 법인을 경영권 유지나 승계의 도구로 재벌 총수 일가는 활용해왔다”며 “재벌그룹 경영권이 창업자의 3~4세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문 내 갈등이 공익·비영리 법인이란 프리즘을 통해 돌출되는 양상이 계속 펼쳐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82개 재벌그룹(대기업집단)이 운영하는 비영리법인(공익법인 포함)은 모두 491곳으로 이 중 106곳은 총수 일가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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