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새끼 남방큰돌고래의 죽음… 제주 바다가 위험하다

허시언 기자 2024. 6. 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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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한 새끼 남방큰돌고래
최근 15개월 동안 7번 관찰
연안 생태계 환경 나빠지며
생존 위협하는 요인 많아져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추모(追募)란 죽은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행위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코끼리가 죽은 가족이나 동료의 곁을 지키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 잎이나 흙, 나뭇가지를 가져와 죽은 코끼리 위에 덮어주기도 하죠. 어미 침팬지가 죽은 새끼를 오래도록 안고 다닌 사례도 종종 관찰됩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에서 어미 남방큰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머리에 이고 수일째 헤엄치고 있다. 연합뉴스


남방큰돌고래도 그들만의 장례 문화가 있습니다. 새끼 돌고래가 죽으면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업고 수차례 물 위로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관찰됩니다. 몇 번의 행동에도 새끼가 깨어나지 않고 죽은 것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어미는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새끼가 썩어 문드러져서 더 이상 업고 다닐 수 없을 때까지 데리고 다니다가 놓아줍니다. 어미가 죽은 새끼를 등으로 떠받쳐 업고 다니는 동안 동료 돌고래가 곁을 지키는 모습도 볼 수 있죠.

남방큰돌고래의 장례식은 최근까지 목격됐습니다. 지난 1일 남방큰돌고래를 추적해온 다큐제주와 제주대 돌고래 연구팀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서 어미 돌고래가 주둥이로 죽은 새끼 돌고래의 사체를 들어 올리고 유영하는 모습을 목격한 데 이어 지난 3일에도 다시 이런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어미 돌고래는 3일째 죽은 새끼를 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 위로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자식 잃은 어미의 마음을 그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죽은 새끼 남방큰돌고래를 등에 업고 다니는 어미 돌고래. 핫핑크돌핀스 제공


가슴 아픈 남방큰돌고래의 장례식은 최근 15개월 동안 7번이나 관찰됐습니다. 이들이 새끼 돌고래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것은 지난해 3월 4일. 이를 시작으로 5월과 8월, 올해 2월, 3월, 4월, 6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목격했죠. 모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체가 사망했습니다. 이들이 발견된 해역은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 일대에 집중됐습니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예전에 비해 더 많이 폐사하고 있나’라는 질문에는 확답할 수 없지만 많은 새끼 돌고래가 죽어나가고 있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끼 돌고래가 많이 죽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죽는 거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의 사망률을 비교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지속적인 연구와 관찰이 필요해요.”

폐사한 새끼 남방큰돌고래의 부검을 진행한 적이 없어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할 수 없지만 대략적인 원인을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연안 생태계의 서식 환경이 과거에 비해 나빠지면서 돌고래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생존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돌고래를 쫓아다니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돌고래 관광 선박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살충제와 제초제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와 해안 개발 사업 등이 새끼 돌고래의 사망 원인으로 추측됩니다.

국제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에서 1000마리 이상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식 환경이 악화되면서 남방큰돌고래의 개체 수는 현재 110여 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남방큰돌고래는 기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들의 개체 수 변화는 생태계 파악의 척도로 여겨집니다. 제주 바다에서 갓 태어난 어린 남방큰돌고래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시사할까.

핫핑크돌핀스는 대정읍 앞바다를 돌고래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는 허술한 가이드라인과 느슨한 단속으로 인해 돌고래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강하게 규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돌고래 보호구역을 지정한다면 제도적인 보호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죠. 돌고래 보호구역을 지정했을 때 ▷돌고래 관광 선박 접근 금지 ▷해안 개발 사업 중단 ▷과도한 농약 사용 규제 등을 실제로 실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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