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주노동자의 목숨값 차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운전 중 전화를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었다. 태국에서 온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점심시간에 폐기물을 분쇄하는 기계에 들어가 잔여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관리자가 기계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 작동시켰다. 유족들이 시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죽음이었다.
한국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법 밖에 밀려난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직장 근처 작은 숙소에서 태국인 아내,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는 너무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새로 산 기계에 폐기 잔여물이 걸려 기계가 멈추는 일이 자주 생기자, 사장은 직원들에게 틈틈이 기계 내부를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직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는 점심시간을 쪼개서 기계 안으로 들어가 잔여물 청소하는 작업을 도맡아 했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랬다. 지독한 성실함이 사고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며칠 뒤 장례식장에서 사업주와 만났다. 변호사 명함을 건네는 내게 그는 회사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면서도, 요즘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한참 동안 하소연을 했다. 필요한 절차와 몇가지 내용을 전달하고 유가족을 만났다. 눈이 벌겋게 부은 유가족 앞에서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젠 좀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매번 어려운 일이다. 통역인을 통해 필요한 서류와 이후 절차를 간신히 전달했다.
얼마 뒤 회사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구체적인 협상이 시작됐다. 회사에서도 늘 성실했던 고인의 삶 때문이었을까. 협의 절차는 비교적 원만히 진행되었다. 다만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향후 소득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회사는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향후 소득을 태국 현지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우리는 일정 기간은 한국의 소득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법원은 미등록 체류자(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사고 발생일 기준 일정 기간(2~3년) 동안 한국에서 실제 얻고 있었던 소득을 기초로 하고, 나머지 기간은 본국의 수입을 기초로 향후 소득(일실수입)을 계산한다. 줄다리기 끝에 3년 정도 기간을 국내 소득으로 계산하기로 합의했다. 위자료를 내국인 기준과 동일하게 계산했음에도, 40대 중반의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해 받는 손해배상금액은 같은 나이 한국인 노동자의 경우와 비교해 30%가 채 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고,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은 언제든지 강제퇴거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체류자격을 연장 또는 변경해 계속 체류하기도 하고,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자국에 돌아간 다음 다시 한국에 오는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소득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득 인정 기간을 2~3년 정도로 짧게 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이주민들은 내국인 기준과 동일하게,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은 최소한 5년 이상 기간의 국내 소득을 기준으로 인정해야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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