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헌혈 유공자는 작은 영웅이다
군대 정훈 시간에 신병이었던 나는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왜 카투사는 헌혈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 부대가 나서서 하면 어떨까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몇달 뒤 헌혈 차가 처음으로 동두천 미군 2사단 영내에 진입했고, 15포병 1대대 카투사 장병들이 헌혈을 했다. 카투사의 첫 헌혈이었고, 이는 국방일보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이 건의를 내가 했지만, 복잡한 행정 처리는 인사과의 이시원 이병이 도맡았다.
나는 10대 때부터 꾸준히 헌혈을 했지만, 지금까지 겨우 56회밖에 하지 못했다. 헌혈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는 오랜 기간 고도 비만 탓에 헌혈을 못했고, 살이 너무 빠져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졌을 때도 헌혈 불가 판정을 받았다.
지난 4월, 국제가마솥나눔연맹(회장 한상현)이 헌혈 행사를 열었지만, 참여율은 다른 봉사활동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헌혈은 매우 건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송윤호씨는 헌혈 50회로 금장을 받았다.
헌혈은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행위 중 하나다. 헌혈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대개 선진국이다. 우리나라도 전체 인구 중 헌혈자 비율이 5.5%로, 미국(6%), 일본(3.3%), 유럽(5~6%)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면, 아프리카(1%), 중국(1.1%), 러시아(1.6%), 남미(1~2%), 중동(1~3%), 동남아시아(1~3%)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헌혈 비율이 매우 낮다.
한 국가에서 헌혈자 비율이 높기 위해서는 의료 인프라, 교육 및 인식, 사회경제적 문제, 문화적·종교적 요인들이 다차원적으로 작용한다. 단순히 애국심과 이타심만으로는 헌혈자 비율을 높일 수 없는 이유다.
우리가 높은 헌혈 비율을 가진 주요 요인으로는 군인과 학생의 단체 헌혈이 있다. 우리나라 헌혈은 10대와 20대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젊은 피가 대한민국을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로의 급격한 진입으로 인해 젊은 피가 점점 부족해질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을까?
헌혈은 상당한 수고를 요한다. 혈장혈소판 헌혈의 경우 최소 1시간이 소요되며, 헌혈의 집에 2시간 정도 머물러야 한다. 헌혈 이후에도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헌혈을 하는 이유는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숭고한 생각 때문이다.
문제는 다(多) 헌혈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다. 헌혈을 30회, 50회, 100회, 200회, 300회를 했든 주어지는 것은 감사패, 배지와 호칭(은장, 금장, 명예장, 명예대장, 최고명예대장)뿐이다. 다헌혈자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이웃사랑에 비해 다소 초라하고 적은 보상으로 보인다.
헌혈 선진국 미국의 경우 다헌혈자를 영웅으로 예우하고 보상한다. 일부 주에서는 세금 공제 혜택도 주고, 티셔츠, 모자, 작은 가전제품 등 특별 기념품도 제공한다. 특별 행사나 파티에 초대해 그들이 영웅임을 널리 알린다. 명예의 전당과 언론에도 그 위대한 이름을 올려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의 다헌혈자에 대한 적절한 예우와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다헌혈자는 보상과 예우가 없어도 헌혈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안타깝다.
적십자와 정부의 근본적이고 전향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혈액 부족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지난 14일은 세계 헌혈자의날이었다. 이를 기념하며, 나는 혈장혈소판 헌혈에 참여했다.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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