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1조 3808억 이혼 ‘100원’에 흔들?[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상고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산분할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판결문을 수정하는 것은 중간단계의 사실관계 관해 발생한 계산오류 등을 수정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재산분할비율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
최태원(63)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3)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결국 대법원으로 갑니다. 최 회장 소유의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지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2심 판결이 확정되면 최 회장은 무려 1조 3808억원의 재산을 노 관장에게 줘야 합니다.
2심 선고가 있은 후 2주도 훌쩍 지난 지난 17일, 때아닌 ‘법정 외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최 회장측이 2심 선고에 대해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부’의 ‘치명적 오류’를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 또한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배포해 반박했습니다.
최 회장이 재산 분할을 위해 SK㈜ 주식을 처분해야 할수도 있는 상황. 재판부와 최 회장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 5월 30일 2심 선고부터 6월 20일 최 회장측의 상고장 제출까지 과정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지난 6월 17일. 최 회장이 SK본사 수펙스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전날 저녁 긴박하게 공지된 기자회견에 최 회장이 직접 등장했습니다.
최 회장측이 오류로 지적한 부분은 ‘대한텔레콤’의 주당 가치 평가 부분입니다. 최 회장은 1994년 11월 대한텔레콤 지분 70만주를 주당 400원, 가액 2억 8000만원에 인수했습니다. 대한텔레콤은 1998년 12월 SK C&C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현재 SK그룹의 지배구조 최정점인 SK㈜ 주식이 됐습니다. 즉, 대한텔레콤 주식은 최 회장 경영권의 시작점입니다.
대한텔레콤(SK C&C)의 주가는 1994년 11월 주당 400원, 1998년 5월 주당 5만원, 2009년 11월 3만 5650원이었습니다. SK C&C가 2007년 3월과 2009년 4월 두차례 액면분할을 거치면서 발행주식수가 50배 늘어났습니다. 이를 반영해 역산하면 대한텔레콤의 주당가치는 ▶1994년 8원 ▶1998년 1000원 ▶2009년 3만 5650원입니다. 문제는 재판부가 1998년 주당 가치를 ‘100원’으로 잘못 계산한 데서 발생합니다.
최 회장측이 이처럼 시기별 대한텔레콤 주가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뭘까요? ‘특유재산’ 여부를 가를 핵심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혼인 기간 부부가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부부공동재산입니다. 다만 상속, 증여 받은 경우는 ‘특유재산’이라고 해서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현재 SK㈜ 주식이 된 대한텔레콤(SK C&C)의 성장에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가 더 컸다면, 대한텔레콤 주식은 아버지의 경영활동으로 가치가 증가한 상속·증여재산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지요.
재판부는 최 회장측의 이의를 받아들여 당일 판결문을 수정했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다음날인 18일 설명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단순 계산 오류로 SK㈜ 주식이 분할대상이 되는지 여부와 분할비율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재판부는 중요내용별로 번호를 붙이고, 밑줄까지 그어가며 반박했습니다.
재산분할 대상으로서 SK㈜의 가치는 2024년 4월 16일 16만원 기점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에 중간단계인 1998년은 물론 SK C&C 상장 시점인 2009년 주가도 핵심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재판부가 시점을 구분해 판결한 이유는 최 회장측이 항소심에서 ‘승계상속형’과 ‘자수성가형’ 사업가를 구분해 특유재산 인정 여부를 달리해야 하는 논지를 펼쳤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기 위해 설명한 것뿐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측 논리를 받아들여 시점별 기여도를 판단한다 해도 2024년 4월 16일로 기준 시점을 늘리면 최 회장측의 기여도가 더 크다고도 반박했습니다.
ⓐ 125배 : 160배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고, ⓑ 125배 : 35.6배를 비교대상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현 회장인 원고가 2009년에 경영활동을 그만둔 것이 아니고, 2024. 4. 16.까지 계속 경영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 회장측은 설명자료 배포 이후 약 3시간만에 다시 입장문을 내 “언론사 설명자료에 최태원 회장의 기여 기간을 2024년 4월까지로 늘리면서 160배가 증가한 것으로 기술했다. 이러한 논리를 견지하려면 판결문을 2024년까지 비교기간을 늘리도록 추가 경정을 할 것인지 궁금하며 해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판결문 경정 외에도 쟁점은 많습니다. 역시 대한텔레콤 주식에 관한 것인데요. 최 회장이 1994년 대한텔레콤 주식을 사들일 당시 ‘자금의 출처’ 또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최 회장측은 최종현 선대회장에게서 ‘증여’받은 2억 8000여만원으로 대한텔레콤 주식을 샀기 때문에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1심 또한 최 회장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습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혼인 이후 네돈, 내돈 구분 없이 사용했는데(어려운 말로 재산이 ‘혼화’ 됐다고 표현합니다), 최 회장이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매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통상 상속·증여 과정은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증명해야 하는데 최 회장이 2심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한 겁니다.
만일 최종현 선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한텔레콤 주식을 최 회장이 직접 증여받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최 회장이 현금을 건네받아 주식을 매수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2심에서 ‘자금의 동일성’이 논란이 됐습니다. 2심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지폐계수기의 ‘분당속도’까지 거론했습니다.
최 회장측은 ➀1994년 5월 31일 최종현 선대회장의 은행 2억 8690만원이 현금 및 대체 인출됐고 ➁1994년 10월 31일 최태원 명의 계좌로 현금 및 수표 2억 8697만 950원이 입금됐으며 ➂1994년 11월 21일 16시 27분 해당 계좌에서 2억 8697만 1050원을 현금 인출한 뒤 ➃같은날 16시 34분 11km 떨어진 다른 은행에서 자기앞수표 2억 8000만원을 당시 유공 계좌로 입금해 주식을 취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➂번 단계 이후 7분 내에 (➃번 단계가) 이뤄질 수 있는지 문제가 있다. 장소적 측면에서도 11km나 떨어진 곳이다. (중략) 통상 현금이 입금·출금될 때 은행원읜 계수기를 통해서 확인하고, 100매 단위 지폐를 묶었다 풀었다 한다. 계수기의 최대 속도는 1분당 1800매를 넘지 못하고 당시 5만원권이 없었기 때문에 2만 8000장(2억 8000만원)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떻게 했는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1994년 5월 31일 최종현 선대회장 계좌에서 출금된 자금과 같은해 10월 31일 최 회장 계좌로 입금된 자금은 물론, 11월 21일 오후 4시 27분에 출금되고 오후 4시 34분에 입금된 자금의 동일성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최 회장측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가 ‘재산분할’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관계를 다투고 싶어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6공화국 지원설’입니다. 2심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새롭게 떠오른 ‘300억 어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SK그룹에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유·무형의 기여가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SK그룹에게도 불명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직접 유감을 표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1991년 태평양 증권 인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SK그룹의 사세 확장에 노 전 대통령의 기여가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직접적인 자금 지원, 밀어주기가 아니라 당시 SK그룹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검찰 수사나 당국 조사 등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중략) 지극히 모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이냐. 태평양증권을 인수할 때 노태우는 현직 대통령이었고, 한국이동통신 인수할 때는 퇴임 직후로 최종현은 최소한 불이익은 받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객관적으로도 그랬다. 결국 최종현이 노태우와의 사돈관계를 보호막·방패막으로 인식하고 위험한 경영을 감행해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피고측이 SK 성장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반면 최 회장측은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존재는 ‘특혜’가 아닌 ‘멍에’였다는 입장입니다. 실제 1992년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당시 SK그룹은 사업자로 선정되고도 특혜 시비로 반납했습니다. 이후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에 재도전 했을 때에도 비용 부담이 큰 공개입찰 방식으로 참여했습니다.
이형희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SK에 대해 국세청, 공정위 등 규제 부처에서 세무조사 등 조사활동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이동통신 인수 당시) 다른 입찰자들의 입찰가격의 거의 2배가 넘는 금액을 넣어 인수했는데 특혜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6공 특혜설은 ‘해묵은 가짜뉴스’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제 모습은 무엇인지 관심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최 회장측은 20일 상고장을 제출했고, 노 관장측은 상고를 포기한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세기의 이혼’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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