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 치마 휘날리며 토끼굴로 풍덩”…디즈니도 반한 한복, 흑요석 작가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6.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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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홍보대사 ‘흑요석’ 우나영 작가
이대출신 동양화 전공자로
10년간 게임업계 경력 쌓다
드라마 등장한 한복에 매료
‘한복 입은 서양동화’ 시리즈
북미·유럽서 히트하며 인기
마블·넷플릭스 등과 콜라보
‘한푸공정’ 바로잡는 책 출간도
흑요석 작가
하늘색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고 토끼굴에 떨어지는 댕기머리 소녀, 두루마기와 갓을 걸치고 곰방대를 문 토끼…. 지난 201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 영국의 대표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이 북미와 유럽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우나영 작가(필명 흑요석)의 ‘한복 입은 서양동화’ 시리즈는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매일 수백 통의 메일이 쏟아졌고, 그림을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미국 그림동화 거장인 에릭 칼의 그림책 박물관은 우 작가의 작품 전시를 제안해왔다. 이후 프랑스와 덴마크, 브라질, 일본 등 해외 곳곳에서 열린 흑요석 작가의 전시회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디즈니와 마블, 어도비, 넷플릭스, 조니워커 등 해외 유명 기업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 7일에는 국가유산청이 디즈니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우 작가를 국가유산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우 작가는 국가유산청과 디즈니가 개발하는 각종 상품과 전시의 삽화(일러스트)를 그릴 예정이다. “10년 넘게 한복을 그렸지만 아직도 그리고 싶은 한복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그를 매일경제가 서면 인터뷰했다.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우 작가의 첫 직장은 게임회사였다. 넥슨에 입사해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개발에 도트 그래픽(점으로 표현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어릴적부터 게임과 만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울티마나 발더스게이트, 영웅전설 같은 판타지 RPG(롤플레잉게임)를 특히 좋아했죠. 자연스레 취업도 관련 업계로 하게 됐고요.”

흑요석 작가
10년 가까이 게임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작가로서의 성취감은 느끼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한다. “게임을 좋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회사의 요구에 맞춰 그려야 하는 그림은 ‘내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죠.”

우 작가가 주목한 소재는 한복이었다.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황진이’와 ‘성균관 스캔들’에 등장한 한복의 실루엣에 매료된 그는 동양화 전공을 살려 한복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래동화 속 한복을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전래동화 속 한복은 너무 당연하잖아요. 서양 동화에 등장하는 드레스가 당연한 것 처럼요. 거기서 ‘당연한 걸 깨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죠.”

우 작가는 회사를 다니며 시간을 쪼개 개인 작업에 몰두했다. “일단 작업은 시작했지만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도트 그래픽 작업만 하다보니 손도 굳어있었죠.”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점심시간을 활용하거나, 퇴근 후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날도 많았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려야 하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 어린 시절 그랬듯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행위에서 오는 충실감이 컸어요.” 그의 대표작인 ‘서양동화 시리즈’와 ‘한복여인 시리즈’는 재직 중 작업을 시작한 작품이다.

흑요석 작가가 그린 디즈니 ‘미녀와 야수’ 그림. 작가 제공
흑요석 작가가 그린 ‘철권8’의 캐릭터 진(왼쪽)과 카즈야. 반다이 남코
‘흑요석’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의 콜라보가 이어졌다.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에게, 마블 코믹스는 ‘토르’와 ‘스파이더맨’에게, 반다이 남코는 격투게임 철권의 ‘카자마 진’에게 한복을 입혀달라고 제안해왔다.

지난 2019년에는 그간 공부하고 알게 된 한복 지식을 직접 책으로 펴냈다. 일본과 대만에서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한복을 소수민족 문화로 치부하는 중국의 ‘한푸 공정’ 논란을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탰다. “처음 한복을 그리기 시작했을 땐 한복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관련 서적을 찾아보며 느낀 점은 텍스트 위주고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죠. 당시의 저처럼 한복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 쉽고 아름다운 한복책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우 작가는 국가유산청, 디즈니와의 협업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담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제 그림을 통해 외국인들이 한복과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며 “전통과 현대, 동과 서를 결합한 작품 활동으로 한국의 고유한 멋과 매력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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