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운동을 할 권리가 필요하다 [6411의 목소리]
변재원 | 지체장애인·인권활동가
나는 장애인이다. 기댈 것 없이 설 수 없고, 목발 없이 걸을 수 없고, 방석 없이 앉을 수 없는 장애인. 무엇 없이 서지도,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위태로운 존재다.
오랜 시간 무기력했던 몸이 사회운동을 계기로 활력을 찾았다. 나쁜 장애인으로 유명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를 만나 얼떨결에 활동가가 되면서부터였다. 활동가들은 정거장 앞에 서 있는 장애인들을 태우지 않은 채 떠나는 버스와 기차를 끝없이 마주하며 이동할 권리를 외쳤다. 그러나 철갑을 둘러싼 차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내 몸의 통증은 점점 커졌다. 결국 장애인 동지들을 거리에 둔 채 무리에서 먼저 이탈하고 말았다. 몸과 마음은 금세 주눅 들었고 오랜 시간 괴로웠다.
회복이 필요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거리에서의 운동’을 당분간 멈추고 ‘체육관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신체 운동을 하려 해도 수많은 체육시설은 적극적으로 장애인 손님을 꺼리고 있었다. 회원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내가 헬스장에 그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는 사람임을 한참 동안 증명해야 했다. 동지들과 버스를 탈 권리를 외칠 때는 부끄럽지 않았지만, 혼자서 체육관에 입장할 권리를 외칠 때는 착잡했고 수모를 느꼈다.
손님, 헬스장 이용하다 다치시면 어떡하게요. 조심히 안 다치게 운동할 수 있어요. 샤워는 어떻게 하시게요. 혼자서 할 수 있어요. 라커룸 사용은요. 탈의실 의자에 앉아 스스로 옷 갈아입을 수 있어요. 그래도 위험할 텐데요. 안 위험해요. 이런 식의 끝없는 우려 섞인 실랑이를 반복해야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 장애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의 소중한 운동장으로부터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옥신각신 끝에 운동을 시작하게 된 첫날이었다. 움직이다 넘어지거나 다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안은 채였다. 한참 서성이다 구석에 놓인 로잉머신 좌석에 앉아보았다. 장애를 가진 불청객이라 생각하니 누군가를 붙잡고 기구 작동법을 물어보는 것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통 눈치 보이는 낯선 공간 안에서 배움 없이 다룰 수 있는 기구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키를 당긴다. 키를 놓는다. 두 동작을 슬렁슬렁 어색하게 반복하였다. 얼마 전까지 거리에서 시끄럽다 핀잔 듣던 장애인은 이 체육관에서는 가장 조용한 존재였다.
그렇게 하루, 열흘, 한달, 반년. 체육관을 들락날락하며 집채만한 몸들 사이에서 작고 휘어진 나의 몸을 가꾸었다. 그사이 체육관의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해갔다. 나는 그곳에서 내 몸의 변화보다 사람들의 변화를 더 크게 인식했다. 언젠가부터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 “이렇게 자세를 잡으면 다쳐요” 하며 운동 자세를 교정하는 조언을 듣게 되었고, “오늘도 운동을 왔네? 요즘 열심이야”라고 덕담하는 친절한 아저씨 친구도 만났다. 나를 어색해하던 데스크 직원은 “68번 사물함은 높지 않죠?”라고 물으며 키 작은 장애인이 닿을 만한 낮은 위치의 사물함을 배정해주었다. 어느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운동하는 일상이 체육관의 새로운 문화로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있었다.
소박한 공간에서 함께 땀 흘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의 기쁨. 지난 5년간의 ‘사회 운동’과 ‘신체 운동’이 일러준 값진 교훈이다. 함께 어울리며 애써 투명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 때의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운동을 통해 나는 더 이상 장애로 인한 몸과 처지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부끄럽다 여기지 않는다.
사회를 바꾸고, 나를 가꾸자. ‘신체 운동’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사회 운동’은 너를 사랑하는 법을 감각하고 꿈꿀 수 있게 한다. 두 운동을 함께 할 때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문제와 가장 사회적인 문제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모두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의 ‘이동권’을 지키기 위해 600일 넘게 지하철 아래를 향하던 장애인 활동가가 꼬박꼬박 저녁마다 운동기구 앞에서 나를 위한 ‘운동권’을 지켜가듯, 나를 향한 운동과 우리를 향한 운동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두 운동장에서 몸 부딪히며 땀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차별 없이 사랑하고 진솔하게 이해하는 모습은 일상이 될 것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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