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히어로즈 시구를 다녀와서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겨레 2024. 6. 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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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기타리스트 이상면이 먼저 읽고 그리다.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얼마 전 고척 스카이돔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위해 크라잉넛이 시구, 시타를 하고 왔다. ​시구 제의를 받았을 때 무척 흥분되고 설레었다. 이곳저곳에서 공연을 29년 동안 해봤기에 본능적으로 고척 스카이돔의 열기와 함성이 상상이 됐다. 마치 포르투갈의 나자레 해변에 서핑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서퍼들의 성지라는 나자레 해변의 파도 높이는 무려 8층 건물 높이라고 한다. 만약 내 시구가 나자레의 파도를 타듯 매끄럽게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간다면 부서지는 파도 소리처럼 우렁찬 환호와 박수를 받겠지만, 내가 던진 공이 바람을 불어 넣다 손에서 미끄러져 버린 풍선처럼 제구력을 잃고 방황한다면 나의 영혼은 파도에 삼켜져 두들겨 맞듯 패대기쳐질 것이고, 얼굴은 데쳐진 문어처럼 붉어질 것이다.

사실 야구선수도 아닌데, 시구 하나에 뭐하러 목숨을 거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선수나 동호인도 아닌 이상 유려한 폼과 빠른 구속으로 깔끔하게 공을 던질 수도 없다. 누구와 비교하거나 누구보다 잘 던질 생각은 없다. 그저 나에게 다가오는 이 파도를 꼭 한번 타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파도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저 멀리 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온 신의 숨결이라고 생각했다. 내 청춘의 캔버스 위에 푸른 물감으로 한 획을 긋듯, 마운드에서부터 홈 플레이트까지 18.44m 거리에 깔끔한 궤적을 하나 그리고 싶었다.

바로 야구 체험 레슨을 알아보고 배우러 갔다. 구속은 느리지만 추진력은 메이저리그 투수 못지않게 빠르다. 고척돔에서 시구하려고 배우러 왔다고 하자 코치님이 “혹시 마운드에서 던지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지만 연습 때부터 기세에 눌리면 안 될 것 같아 “네” 했다. 코치님은 마운드용 발판을 가져다주시며 “마운드는 생각보다 멀고, 포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이렇게 기울어진 발판에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야구장 갔을 때 당황하죠”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실전은 다르구나. 아무리 합주를 많이 해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모니터 사운드부터 모든 환경이 연습 때와는 다르기 때문에 어려울 때가 있다.

와인드업부터 체중 이동, 축발 넘어가는 자세 등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녔다. 그래도 가끔 경쾌하게 포수 글러브에 박히는 소리가 짜릿하게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이렇게 60분 동안 즐거운 몰입과 함께 첫 레슨이 끝났고 집에 와서도 머릿속은 야구 생각으로 꽉 찼다.

연습장은 실제 마운드보다 가깝기 때문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살짝 위쪽을 향해 던지면서 연습했다. 시간 날 때마다 투구 폼을 생각하고 연습했고, 걷다가도 마운드처럼 기울어진 곳이 나오면 투구 연습을 해봤다. 두 번의 레슨 동안 200번 정도 던진 것 같다. 한 번의 시구를 위해 200번을 던졌는데, 선수들은 몇십만 번을 던지고 연습했을까?

흔히들 야구를 인생 같다고들 얘기한다. 매회 다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라잉넛이 아무리 승률이 좋더라도 매번 공연을 잘할 수는 없다. 가끔 큰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컨디션 난조로 공연을 망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일희일비할 수는 없다. 한 번의 좌절은 슬라이딩하다가 묻은 먼지 털어버리듯 털어버려야 한다. 먼지는 우리가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한 회 한 회 매듭짓고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음 회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

이날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는 영화 같았다. 그라운드 홈런에, 백전노장 이용규 선수의 몸을 불사르는 호수비, 도루와 홈런, 비디오 판독, 팬들과 크라잉넛의 불꽃 같은 응원, 역전의 짜릿한 승리까지. 키움 히어로즈 서포터즈로서 최근의 부진은 가벼운 먼지 털 듯 털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매회 시작하길 바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팬들도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에 대해, 채찍질보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환희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간다. 인생이라는 야구게임, 우리는 끝나지 않고서야 이 게임의 승패를 알 수 없다. 각자만의 리그에서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인생 나이 10년을 야구의 한 회로 친다면, 내 나이도 이제 4회 말에 접어든다. 나는 아직 꿈을 저버린 적이 없다. 나의 꿈은 그리 거창할 것은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파도를 피하지 않고 도전하고 즐기는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시구할 때 파도가 부서지는 듯한 함성이 “살아라!”라는 소리처럼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을 살아가자. 마음을 담아 그 순간에 몰입했을 때, 삶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한 박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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