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반전의 핑크빛 꿈, 치링치링 치리링~ [아침햇발]
정세라 | 뉴스서비스부 기자
고교 입시설명회에 다녀왔다. 학군지 대형 학원이 개최한 ‘고교학점제 시대 특목·자사고 입시설명회’다. 아이가 이제 초등 6학년인데, 고교 입시설명회라니 웬 설레발일까. 하지만 어쩌랴. 한두 해 전만 해도 커피잔을 앞에 둔 친구들이 아이 입시 얘기에 한창이면 그저 눈앞의 케이크를 쪼개 먹는 데 집중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좀 크고 흔한 선행학습 경로에 접어들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난수표’ 같던 고교학점제와 특목·자사고 얘기에 귀가 팔랑팔랑했다. 아이도 선행학습을 시작했는데, 학부모라고 선행학습이 필요하지 않을 리가….
솔직히 말하면 내 무지에 ‘현타’가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 근방 특목고를 지나쳐 다니면서도 입시야 당연히 몰랐고 그 학교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얼마인지도 별반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간만에 만난 오랜 친구들이 말했다. 최근에 시간제 알바를 시작했다고, 마트 계산원으로 취직했다고…. 경력단절 기간이 길었던 친구들이 아이 학원비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뒤늦게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고군분투 중이었다. 한 친구는 아이가 외고에 가고 싶어 한다면서 등록금 걱정을 했다. 듣고 보니 학비에 기숙사비를 합치면 월 140만원이 넘는 돈이다. 지금 매달 돈 백 이상 쓰고 있는 사교육비는 추가로 계속 나가는 거라고 옆의 친구가 거들었다. “특목고 쉽게 보내는 거 아니야. 그거 학비 전액 지원해주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이나 맘 편하게 보내는 거야.” 역시나 유일하게 잘한 건, 아이를 둘 아니라 하나만 낳은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입시설명회 요지는 이러했다. 사교육계가 보는 고교학점제 시대란 (제도 도입의 공적 취지가 무엇이었든 간에) 내신과 수능 변별력이 약화하면서 학교생활기록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세특을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과 선택과목을 제공하는 특목·자사고의 대입 우위가 유지·강화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특목·자사고의 명문대·의치약한수 입결 데이터가 쭉 펼쳐졌다. 사교육 업계의 이해와 맞물려 있으니 걸러 듣는다 해도, 그럴싸했다. 이어서는 면접 기출문제 사례들이 나왔는데, 끙 소리가 났다. 면접에서 시늉이라도 하려면 학원을 안 다니곤 안 될 것 같았다. 생기부를 채워가며 특목·자사고 입시를 중학교 때 준비해 보는 것은 설령 떨어지더라도 고교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준비를 선행해 보는 의미가 크니, 일단 입시에 도전하라! 이런 조언들이 이어졌다.
며칠 전 ‘인구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고위직 인사들이 ‘시크릿 쥬쥬’나 ‘캐치! 티니핑’급으로 현란하게 ‘핑크 핑크’ 한 스튜디오에 쭉 둘러앉아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3대 핵심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임기 내에 출산율을 반등시키고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 1.0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정부가 온갖 크고 작은 정책 패키지들을 줄 세웠지만 사실 주택 대출·분양 기회 문제가 아니라 소득 대비 높은 집값, 무한 사교육을 부르는 과도한 입시 경쟁, 임금격차와 긴 노동시간, 수도권 쏠림이란 구조적 문제들이 인구문제의 핵심이란 건 다들 안다. 10년 새 서울 아파트 체감 가격은 두세 곱절 뛰었지만 집값 떠받치기는 여전하고, 일·가정 양립과 양육 지원을 역설하는 핑크 스튜디오엔 주 69시간 노동유연화 논란의 주인공들이 쭉 둘러앉았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과도하고 불필요한 경쟁 문화’를 문제로 짚었지만, 특목·자사고 존치와 함께 대입은 물론 고교 입시설명회도 빽빽이 들어차는 상황이 언제쯤 완화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나야 하나만 낳아서 다행입네 하지만, 내 후속 세대의 ‘낳지 않을 결심’ ‘못 낳겠다는 포기’를 그날의 정책 패키지가 설득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맘카페에선 이런 우스개가 있다. 아이는 전교 1등 하는데, 엄마는 ‘난 입시 하나도 몰라, 공부는 애가 알아서 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쿨한 엄마가 꿈이라고. 실은 나도 그런 엄마를 꿈꾼다. 그놈의 입시설명회 한번 다녀왔더니 기가 빨린다. 일단 학원비는 결제하고 있으니 아들아, 알아서 ‘잘’하렴~ 하고 싶다. 저출생 반전을 꿈꾸는 핑크 스튜디오에 둘러앉았던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도 나 같은 마음일까. 재원도 부족하고, 뾰족수도 안 보이지만 그래도 합계출산율 1.0은 하고 싶다. 정책 패키지 던져놨으니 여성들아, 청년들아 제발 좀 알아서 ‘잘’하렴~ 핑크 스튜디오에 딱 맞을 ‘시크릿 쥬쥬’ 마법 주문을 읊어본다. 치링치링 치리링~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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