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이해 따라 `오락가락`, 북러 동맹의 온도 차이

박영서 2024. 6. 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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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1945년 8월 9일 0시 소련 극동군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 사할린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한반도를 담당한 부대는 제25군이었다. 9일 소련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대가 일본 해군기지가 있는 웅기·나진·청진에 맹폭을 가하면서 공격이 개시됐다. 10일 경흥을 점령했고 11일 웅기에 상륙했다. 13일에는 나진을 접수했고 16일엔 치열한 전투 끝에 청진을 장악했다. 21일 원산 상륙작전이 이뤄졌고 24일 낙하산 부대가 평양과 함흥에 투하되자 조선 주둔 일본군은 항복했다.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 알렉산드로 바실렙스키와 제25군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는 제88보병여단(88여단) 대대장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 후보로 추천했다. 나라가 새로 생겼으니 지도자도 젊어야 한다면서 그를 후보로 내세웠다. 스탈린은 승인했고 김일성은 북한의 새 지도자로 발탁됐다.

1948년 9월 김일성 정권이 수립됐고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북한은 만신창이가 됐다. 소련은 북한의 재건을 도왔다. 견고한 밀월 관계였다. 그러나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균열이 생겼다. '스탈린 격하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이 흐루쇼푸 노선을 '수정주의'라고 맹비난하면서 중소 분쟁의 막이 올랐다. 이에따라 북소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소련과 중국을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 외교전략으로 선회했다. 정확히 말하면 소련보다는 중국을 선택했다. 소련 지도부는 이런 북한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소련의 대북 지원은 격감했다. 북한은 소련이 주도하는 사회주의권 경제공동체인 코메콘(경제상호원조회의) 가입을 거부했다.

1964년 10월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 지도부가 등장하자 양국 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그러나 북한이 독자적인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 또다시 흔들렸다. 군사 지원과 무역량은 축소됐다. 1990년 한국과 소련이 공식수교를 맺으면서 관계는 더 소원해졌다. 옐친 시대, 북러 관계는 최저점으로 직강하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꾼 이가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2000년 7월, 대통령이 된 지 얼마 안 된 푸틴은 북한을 방문했다. 옛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이후 푸틴 정권은 북한과 가까이 지내왔다.

그렇다고 해도 밀월 관계는 아니었다.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행했다. 그런데 상황에 변화를 주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러시아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북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지난 19일 새벽 푸틴 대통령은 24년만에 다시 평양을 방문했다. 푸틴과 김정은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 기존보다 대폭 격상된 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특히 북러 중 한쪽이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은 지체없이 군사적·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를 놓고 북러 관계가 다시 밀월 관계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굳건한 우정'이 지속될 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북러 밀착은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언제든지 틈새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관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더구나 북한에 있어 러시아는 중국을 대체하지 못한다. 북한 무역에서 중국 비중은 90% 이상이다. 러시아 경제 규모는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중국이 보는 가치보다 훨씬 떨어진다. 그래서 러시아의 외교 전략에서 북한은 변방이었다. 김정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러 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 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중국 들으라고 하는 소리'로 이해하면 된다.

그렇다고 이번 푸틴의 방북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김정은에 있어 '최종 목적지' 워싱턴과 거래를 하려면 푸틴과의 '브로맨스'가 필요하다. 아마도 김정은은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북러 관계에는 각 나라마다 복잡한 전략적 셈법이 얽혀 있다. 따라서 한국은 입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냄비 끓듯 냅다 지르는 외교가 아니다. 북러 관계가 역사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정교하고 유연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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