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대기업집단지정제, 폐지할 때 됐다
세계 각국은 거대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반(反)독점법(독점 규제법)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시장의 자유경쟁을 유도해 독점기업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1911년 미 연방대법원이 셔먼법(the Sherman Act)에 따라 '석유왕'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을 정유시장 독점을 이유로 엑슨과 모빌, 셰브런 등 38개 기업으로 분할하도록 하고, 담배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아메리칸 토바코를 3개 기업으로 쪼갠 것이 대표적 사례다. 1942년에는 미국 방송산업을 독점했던 NBC가 강제 분할됐다.
기업 분할, 과징금 부과, 인수·합병(M&A) 불허 등이 독점 규제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를 위해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각국은 반독점 정책을 담당할 부처를 두고 있다. 한국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일을 맡는다.
그런데 이런 반독점 정책외에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제도가 있다. 바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그것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규모가 일정 기준 이상인 대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 추가 규제하는 것이다. 경제력집중 완화가 목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 전두환 정부 때였다. 지정 기준은 경제규모가 커진 데 따라 바뀌어왔다. 도입 당시엔 자산총액 규모가 4000억원 이상으로, 삼성 등 32개 기업이 지정됐다. 이후 자산순위로 기준이 변경돼 1위부터 30위 기업을 지정하기도 했고, 2000년대 들어선 다시 자산총액으로 기준이 바뀌었다.
현재 공정거래위는 매년 대기업집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두 가지로 지정해 발표한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으로 비상장사 주요사항 공시,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등 공시의무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 등을 적용한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집단으로, 추가적으로 상호·순환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 ·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을 적용받는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88개 기업집단(소속회사 3318개)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48개 집단(2213개)을 각각 지정했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과거 재벌로 일컬어진 대기업들의 상호출자나 채무보증,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등을 막는 데 기여해왔다. 하지만 우리 경제규모가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커져 기업 경영도 투명해지고,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이 일반화된 지금은 부작용이 더 큰 까닭에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나 자유기업원 등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우리와 비슷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운영했던 일본의 경우 2002년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 사실상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한 상태다.
경쟁자들인 다국적 기업들은 제한이 없는데 기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규제를 추가로 가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외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입이 자유로운 개방경제 시대에 폐쇄경제에나 유효한 대기업집단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가 대기업의 신산업 발굴을 위한 벤처기업, 유망 중소기업 투자나 M&A 등을 저해하고 있는 것도 부작용의 하나다.
'피터팬 증후군'의 요인인 점도 문제다. 성장하면서 받는 각종 규제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중견기업 혹은 대기업으로 성장을 포기하는 현상이다. 한경협에 따르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추가로 126개의 규제가 적용되고,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총 적용 규제 숫자는 274개로 늘어난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은 최대 342개의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이러니 어느 경영자나 창업자가 기업을 더 성장시키려고 할 것인가.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지고 기술 혁신으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이 등장하는 지금, 과거 폐쇄경제 시대의 규제가 그대로 남아있는 건 넌센스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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