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당권경쟁 '채상병특검 균열'… 韓 조건부 수용에 羅·元 "안돼"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 대표 선출을 위한 레이스가 막을 올렸다. 앞서 출마 선언을 한 윤상현 의원에 이어 23일엔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나란히 출사표를 던졌다. 나 의원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한다고 일찌감치 선언하며 '당권·대권 분리'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용산과의 관계에 대해선 '당정 동행'이라는 키워드를 꺼냈다.
원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부각시키면서도 '레드팀'을 구성해 민심을 적극 전달하는 창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가장 선명하게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둔 것은 한 전 위원장이었다. 그는 '당정관계 쇄신'을 강조했고 무엇보다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특검을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임명하는 쪽으로 수정하도록 여당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나 의원과 원 전 장관이 즉각 반대 의견을 밝히며 신경전이 시작됐다.
이번 전당대회 구도는 사실상 한 전 위원장이 당원 지지에 힘입어 '1강'으로 치고 나가는 가운데 나머지 후보가 '합종연횡'을 꾀하는 모양새로 전개될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선 경선 과정에서 단일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차기 대표 출마를 선언한 4인방은 24~25일 후보 등록을 거쳐 26일부터 전당대회가 열리는 다음달 23일까지 공식 선거 기간에 돌입한다.
이날 한 전 위원장의 출마선언문은 6900자에 달했다. 분량이 가장 적었던 원 전 장관(563자)의 12배였다.
23일 릴레이로 국민의힘 당 대표 도전을 선언한 후보 3명 중 포문을 연 건 나경원 의원이었다. 나 의원은 4·10 총선에서 자신이 승리한 점을 부각하며 '원외 인사'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차별화를 노렸다. 또 차기 당 대표의 핵심 역할은 202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당 체질을 바꾸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자신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나 의원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의힘은 제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 정말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저는 바꿀 사람, 이길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지자들 응원 속에 초록색 재킷을 입고 등장한 그는 "이겨 본 사람만이 이기는 길을 안다"며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유는 이제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 미숙한 정치, 염치없는 정치에 맡길 수 없다"고 한 전 위원장을 겨냥했다. 나 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5선 고지를 밟았다.
나 의원은 '당정 동행'을 강조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밀어주고 끌어주며 같이 갈 것"이라며 통합과 균형을 내세웠다. 그는 "저는 계파도 없고, 앙금도 없다"며 "줄 세우는 정치, 줄 서는 정치는 제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에는 훌륭한 대권주자가 많다"며 "당 대표는 묵묵히 대권주자를 빛나게 해야 한다. 계파 없고, 사심 없는 제가 그 적임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에게 있어 대권의 꿈은 접을 수 없는 소중한 꿈이었으나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나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자천타천으로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으로 꼽히는 한 전 위원장과 원 전 장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 나 의원은 22년간 보수당원으로 걸어온 정통성을 내세웠다. 그는 "언제나 흔들림 없이 보수를 지켜왔고 뿌리 깊은 나무만이 시련의 계절을 견딘다"며 "국민의힘은 더 깊고 튼튼한 뿌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편 나 의원은 이날 한 전 위원장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조건부 수용론을 내놓자 즉각 "민주당의 특검은 진실 규명용이 아니라 정권 붕괴용"이라며 "한동훈 후보의 특검 수용론은 순진한 발상이고 위험한 균열"이라고 각을 세웠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10 총선 후 사퇴한 지 73일 만에 여의도로 돌아왔다. 국민의힘 당권 도전 선언과 함께 전면에 내세운 건 '변화'였다. 그는 핵심 메시지로 '수평적 당정관계 수립'을 제시했다. 채상병 특검과 관련해서도 그는 제3자가 특별검사 임명권을 가져간다는 전제를 내걸고 "국민의힘이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연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오로지 국민"이라며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으로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은 "당이나 정이 민심과 다른 길을 가면, 한쪽에서 견고하고 단호하게 민심의 길로 견인해야 한다"며 "제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당이 정부와 충실히 협력하지만 꼭 필요할 땐 합리적인 견제와 비판, 수정 제안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그것이 우리가 어렵게 탄생시킨 윤석열 정부를 흔들림 없이 지켜내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민의힘 재건 방안에도 장시간을 할애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두 달은 반성과 혁신의 몸부림을 보여줬어야 할 골든타임이었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국민 요구에 묵묵부답,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만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보수 정치인들이 훌륭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원외 정치인 현장 사무실 개설 허용 △여의도연구원 기능 강화 △정치 저변 확대를 꼽았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채상병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과 관련해서도 질의응답 과정에서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채상병 특검과 관련해 국민 의구심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실 규명을 위한 특검을 국민의힘이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민주당이 특검을 고르면 논란이 끝나지 않고, 진실도 규명할 수 없다"며 "공정을 담보할 수 있는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을 골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검법 발의 조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종결을 내걸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선 "특검 도입 사안이 아니다"며 "대신 국민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특별감찰관 추천과 제2부속실 설치를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원팀이 돼야 한다. 108석으로는 똘똘 뭉쳐도 버겁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앞세우면서 '친윤석열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서 면모를 감추지 않았다. 다만 '당정 원팀'을 강조하면서도 민심을 윤 대통령에게 전달할 '레드팀'을 두겠다고 공약했다. 또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가 먼저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원 전 장관은 23일 "이러다가 다 죽는다.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말로 출마 선언을 시작했다. 그는 "여당 선거인데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면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 제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는 "신뢰가 있어야 당정관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저는 대통령과 신뢰가 있다"며 "레드팀을 만들고 레드팀이 취합한 생생한 민심을 제가 직접 대통령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레드팀이란 기업이나 각종 조직에서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조직을 가리킨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수를 무기로 국회의 오랜 전통과 관행을 짓밟고 있다"며 "야당의 폭주, 정면돌파하겠다. 협치는 하지만 무릎 꿇지 않겠다"고 날을 세웠다.
원 전 장관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먼저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분명한 시각차가 드러난 대목이다. 원 전 장관은 "공수처의 수사가 철저히 진행되도록 하고, 진행 결과를 본 후 미진함이 있다면 그때 특검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도 검찰의 수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대권 잠룡으로도 꼽히는 원 전 장관은 한 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원 전 장관은 "2년, 3년 뒤는 국민께서 어떻게 불러주시냐에 따라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
한편 원 전 장관은 이날 원외 당협위원장 워크숍에 참석해 당 사무총장을 원외 인사로 두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또 다른 당권주자인 윤상현 의원도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원 전 장관은 또 인재 관리 등 업무를 전담하는 부총장을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유섭 기자 /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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