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종의 위클리반도체] 젠슨 황을 있게 한 세 통의 편지

오찬종 기자(ocj2123@mk.co.kr) 2024. 6. 2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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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위 반열에 오른 엔비디아 스토리

"그는 한 명의 글로벌 '록스타'다."

최근 미국 CNN이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에 대해 내린 한 줄 평입니다. 세계 1위 시가총액 반열에 오른 기업의 수장이 록스타에 비유된다는 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젠슨 황의 모습을 보면 이 같은 비유가 절대 과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백발의 머리를 하고 검은색 가죽 재킷을 유니폼처럼 입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각종 행사장마다 그를 향해 몰려드는 팬들을 보면 어느 록스타의 콘서트 현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죠. 평소 행동도 록스타 모습 그 자체입니다. 행사장에서 자신의 신체에 사인을 요청하는 여성팬을 위해 거침없이 펜을 들고요. 어느 날은 길거리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무명 유튜버의 방송에 "무슨 촬영 중이냐"며 불쑥 난입하기도 합니다. 그는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후원 세례를 보내자 답례로 즉석에서 노래를 한 곡 열창하곤 홀연히 자기 갈 길을 떠났죠.

거침없이 소신 발언을 쏟아내는 그의 '록 스피릿'도 굉장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조차 벌벌 떠는 중국도 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죠. 최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국제 컴퓨터 포럼인 '컴퓨텍스 2024' 등 공식 석상 인터뷰에서 그는 여러 차례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명명합니다. 본인 발표에 쓰인 참고자료에서도 대만과 중국을 다른 국가로 지도에 표시하며 강조했죠.

중국인들에게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역린'을 건드린 일입니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거든요. 수년 전 대만 출신의 한국 K팝 아이돌이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매 운동을 하며 기어코 눈물의 사과까지 받아냈던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국도 젠슨 황 앞에서는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당국은 물론 관영 언론들도 침묵을 지켰죠. 그가 만드는 인공지능(AI)칩이 중국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젠슨 황이 대만과 중국 관계에 대해 강경 발언을 한 것은 그의 출신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대만 이름으로 황런쉰(黃仁勳)인 젠슨 황은 대만 출신 1.5세대 이민자입니다. 대만·미국 이중 국적자인 상태죠.

그는 1963년 대만 타이난시에서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영미 문화와 정보기술(IT)에 대해서 태어날 때부터 DNA에 이식됐다고 볼 수 있죠.

엔비디아 최초의 NV1 칩 탑재 모습. 엔비디아

그는 9세 때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이후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습니다. 미국 오리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젠슨 황은 1984년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 1992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담당자로 취업했죠. 평범한 동양인 이주민 개발자로 흘러가던 그의 삶은 30세가 되면서 중요한 변곡점을 마주합니다.

그는 1993년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합니다. 그의 친구들인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프스키가 뜻을 함께 모았죠. 그들은 PC 기술의 발전으로 3D 그래픽을 처리하는 반도체가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사무실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실리콘밸리의 레스토랑 '데니스'에 모여 친구들과 함께 매일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합니다. 회의 중 음식도 시키지 않고 몇 시간 동안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쫓겨난 것은 유명한 일화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심 차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엔비디아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절대 강자로 군림한 것은 아닙니다. 설계는 성공했지만 검증도 안된 스타트업의 칩을 만들어줄 회사는 마땅치 않았죠. 이때 그는 같은 동포인 대만의 모리스 창 TSMC 회장에게 첫 번째 편지를 씁니다. 장래성을 보고 엔비디아의 제품을 만들어달라는 구구절절한 내용이었죠. 당시 이미 TSMC는 반도체 1세대 거인인 창 회장의 지휘 아래 글로벌 1위 파운드리로 등극하고 국영 기업에서 민영화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나설 이유가 전혀 없었죠.

하지만 창 회장은 이 편지를 읽은 뒤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미국의 작은 신생 스타트업 엔비디아의 황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미래를 보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이어가보자"고 젠슨 황을 응원했습니다. 이 인연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굳건하게 이어지며 TSMC와 엔비디아가 원팀을 이루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렇게 두 거인이 의기투합을 시작했지만 즉시 성공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위기는 더 심화됐죠. 1995년 처음 내놓은 제품은 PC용 멀티미디어 그래픽카드 'NV1'은 수천 개도 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Next Version(NV)'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회사 이름 'NVDIA'에도 담겨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후속작(NV)을 만들면서 '인비디아(Invidia·부러움)'를 이끌어내는 회사를 만들자는 철학이죠. 그의 이런 노력은 시장에서 점차 인정받았습니다. 당시 최고 게임 기업 중 하나였던 일본 세가로부터 계약을 따냈죠.

하지만 이 계약은 더 큰 악재가 됩니다. 세가와 함께 개발하던 게임기 '드림캐스트'에서 엔비디아의 GPU는 프로젝트 종료 시점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세가는 손해를 무릅쓰고 엔비디아가 아닌 다른 회사의 제품을 탑재하기로 최종 결정합니다. 이때 젠슨 황은 당시 세가의 사장이었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에게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막대한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사실 본론은 뒷장에 숨겨져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의 잠재 기술력을 인정한다면 부디 자신들에게 투자를 해주길 바란다는 요청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염치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 이 편지는 세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세가는 당시 엔비디아의 반년 치 운영비에 달하는 5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죠.

기사회생한 엔비디아는 계속해서 'NV'를 만들어냈습니다. 1999년 지금의 그래픽카드 형태인 지포스 초기 모델을 출시하고 나스닥에 상장하는 데도 성공했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위기는 또 찾아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엔비디아 역시 마찬가지로 파산 위험을 겪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2007년 많은 비용을 들여 GPU 기반 소프트웨어 쿠다(CUDA)를 내놨는데 초기 반응이 미미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금융위기로 자금 유동성까지 막히면서 회사는 존폐의 기로에 또 몰리게 됩니다.

이때 젠슨 황은 또다시 펜을 듭니다. 세 번째 편지의 수신자는 주주들이었습니다. 그는 2008년 말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삭감하겠다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비용을 쿠다 생태계를 확대하는 우수 인력을 채용하는 데 사용할 테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쿠다는 전 세계 개발자 47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지금도 AI를 연구하는 개발자들은 대부분 쿠다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하죠. 쿠다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엔비디아의 제품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엔비디아의 왕국에 개발자들을 가두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후 엔비디아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AI 붐을 타고 엔비디아의 GPU는 이제 AI칩으로 거듭나면서 더욱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죠.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콧대 높은 일론 머스크도 "지금 (엔비디아의) GPU는 마약보다 구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주력 AI칩인 H100은 개당 가격이 3만달러(약 4000만원)에 달하지만 굴지의 테크 기업들도 이 칩을 받으려면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6월 처음 1조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후 불과 1년도 안 돼서 3조달러를 넘어서며 장중 시총 1위 기업에 올라섰죠.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 기업 분석 전문가 전망을 인용해 "엔비디아 주가가 지금보다 3배 이상 급등해 시총 10조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베스 킨디그 IO펀드 분석가는 "엔비디아의 시총이 현재보다 270% 더 증가할 것"이라며 "향후 몇 년 동안 천문학적 이익을 추가로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포천은 "당분간 경쟁 업체들이 엔비디아의 아성을 무너트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아직도 시장의 장밋빛 전망과는 전혀 다른 경계론을 얘기합니다. 그는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매일 직원들에게 강조합니다. 엔비디아가 언제든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경각심을 놓지 않고 있죠. 그리고 그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는 언제든 기꺼이 주저하지 않고 펜을 들어 '네 번째 편지'를 써서 위기를 돌파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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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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