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우크라 무기 지원의 조건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6. 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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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던 일들 벌여온 푸틴
韓 우크라에 무기제공 막으며
對北 군사기술 제공 저울질하나
우리도 선넘는 지원 확인땐
러에 상응한 대응 지체없어야

지난 주말 전직 주러시아 대사 3명을 포함해 이름 있는 기관의 러시아 연구자까지 총 8명에게 북·러 밀월에 따른 우리의 갈 방향을 물어봤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주면 러시아가 '대북 군사기술 지원 보복' 운운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문제였다. 다들 "직접 무기 지원은 절대 안 된다. 도발할 명분만 주는 꼴"이라고 했다. 푸틴 방북 결과에 분개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 본때를 보여주자며 흥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도 무기 제공이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미국에서는 한국과 핵공유·핵배치 주장이 터져 나온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주로 공화당계 인사들이 목소리를 내온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되면 한국 핵무장이 다소 유리해질 것으로 예상돼왔다. 물론 미국이 핵을 용인해도 공짜는 아니다.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주고 핵을 받는 협상을 해볼 수 있다. 그 대신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지원이 가속화하고,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부추길 우려는 커진다. 무기부터 보냈다가 핵 논의가 가라앉으면 '부도수표'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건부터 적절한 예측을 못 해왔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장관이 포탄을 구하러 평양에 가고, 북·러 정상회담이 2년 연속 열리고, 조약에 군사 원조까지 복원될 줄 몰랐다. 안일한 전망만 하다가 결과를 받아들고는 옥신각신할 뿐이다. 그래서 이번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줬을 때 다가올 비극적인 상황 전개를 감안해야 한다. 수십 년간 응축된 초기술을 북한에 넘기면 훗날 러시아도 위협받을 테니 어림없다는 '희망 회로'만 돌려선 안 된다.

한 전문가는 "국가 명운과 세계 패권을 놓고 투쟁 중인 러시아는 북한이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트집 잡힐 일을 하면 비이성적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그나마 푸틴이 한국을 나름 신경 썼다는 신호는 몇 가지가 있다. 푸틴은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지만 지원 앞에 '군사'라는 단어를 뺐다. 이로 인해 다음날 조약 전문이 공개될 때까지 정부 당국도 군사 개입은 아니라고 봤다. 푸틴의 기만술일 수 있지만 '군사'를 꺼내기 불편했을지 모른다. 푸틴은 김정은이 썼던 '동맹'이라는 표현도 안 했다. 조약에는 다방면에서 협력이 적시됐지만 정작 군사기술 분야는 없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순전히 방어적 성격"이라고 했다.

푸틴 방북을 바라보는 층위에도 차이가 있다. 푸틴은 하노이에서 '아시아 블록화' '나토(NATO)의 아시아 확대'를 언급했는데 방북을 통해 북·러 관계를 넘어 서방에 맞서는 북·중·러 결속이라는 더 큰 그림을 염두에 뒀다. 북·러 협력을 한국 겁박만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커지는 미국 영향력을 견제하는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 주도의 '쿼드(QUAD)'나 '오커스(AUKUS)'에 대항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또 지난 4월 러·중 외무장관이 "나토가 아시아·태평양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고 한 우려를 불식하는 행보다. 그러니 우리가 북·러 밀월만 붙들고 푸틴에게 따져봐야 '소귀에 경 읽기'다.

푸틴은 방북 결과를 놓고 우리가 스스로 혹은 미국 요구에 따라 무기 제공을 실행할지 시험해보려 한다. 남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푸틴 스타일'이다. 설마 했던 일들을 자주 감행한 푸틴이 우리에게 비수가 될 기술을 북한에 건네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도 23일 "러시아가 고도 정밀 무기를 북한에 준다면 우리에게 (넘지 못할) 선은 없다"며 "우리의 무기 지원은 러시아 측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러시아 태도를 봐가며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러시아의 선 넘는 지원이 확인되는 순간 우리도 그들이 아파할 아킬레스건을 지체 없이 공략해야 한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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