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규도 ‘아일랜드홀’의 기적… 코오롱 한국오픈 우승

민학수 기자 2024. 6. 23. 17: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역대급 4.2m 그린 스피드 극복 상금 5억원 디오픈 출전권
“13번 홀에서 물에 빠진 공 튀어나오며 우승 확신”
최경주가 쓰던 2001년 모델 퍼터를 들고 나와 코오롱 제66회 한국오픈 에서 우승한 김민규. /한국오픈 조직위

국내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인 코오롱 제66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4억원·우승상금 5억원)가 그린스피드 4m 시대를 열었다. 대회 이틀째는 사상 가장 빠른 그린 스피드 4.2m, 폭우가 쏟아져 두 차례나 경기가 중단됐던 3라운드에서 4.0m, 마지막 날 4.1m로 그린이 세팅됐다. 1라운드는 PGA투어 평균 수준인 3.8m였다.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US오픈의 평균 그린 스피드가 4.27~4.42m인데 한국오픈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그린 스피드가 나온 것이다.

이번 대회 기간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 컨트리클럽(파71)은 그린에서 많은 선수가 국내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빠른 그린 스피드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라운드가 거듭할수록 선수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베테랑 허인회(37)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한국오픈에 나왔지만 이렇게 좋은 그린은 처음 경험한다”면서도 “무조건 빠르다고 좋은 게 아니라 코스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라는 홈이 파인 알루미늄 막대(91㎝)를 그린과 20도로 만들고서 그 위에 볼을 놓아 그린에서 굴러간 거리로 표시한다. 이정윤 우정힐스 컨트리클럽 대표는 “한국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는 선수는 세계 어느 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고 코스를 세팅한다”며 “그린스피드 4m 시대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다운 우승자가 나올 수 있도록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995년 1월 7일 우정힐스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는 춘천 라비에벨컨트리클럽까지 총괄 대표를 맡고 있다. 우정힐스에서 처음 열린 한국오픈부터 코스 세팅을 주관하며 오늘에 이른 산증인이다. 이 대표는 “빠른 그린스피드는 대회 직전에 갑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지난해 대회가 끝나고부터 그린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 기간이 가까워질수록 잔디 길이와 그린의 단단함, 수분 함량 등을 조절해가면서 그린스피드를 조절해간다.

이렇게 빨라진 우정힐스의 그린을 23세의 기대주 김민규는 능숙하게 헤쳐나갔다.

김민규는 23일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2개를 묶어 5언더파 66타를 적어냈다. 김민규는 최종 합계 11언더파 273타로 2위 송영한(33)을 3타 차이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22년 한국오픈 이후 2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국내 최고 우승 상금인 5억원과 오는 7월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에서 열리는 디오픈 출전권을 받았다. 준우승 송영한도 디오픈 출전권이 주어진다. 김민규는 지난 2일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에서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처음으로 2승을 거둬 시즌 상금 1위(7억7200만원)과 대상 포인트(3926점) 1위로 올라섰다.

3라운드까지 선두 송영한에게 3타 뒤진 3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김민규는 8번 홀(파5)에서 이글을 잡으며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김민규는 홀까지 227야드를 남기고 친 두 번째 샷을 홀 3m에 떨어뜨리고 나서 이글 퍼트를 넣었다.

12번 홀(파4) 버디로 3타차 선두로 달아났던 김민규는 13번 홀(파3)에서 타수를 잃을 아찔한 순간을 맞았다. 연못으로 둘러싸인 13번 홀에서 아이언 티샷이 그린 왼쪽으로 날아가 물에 빠진 듯했다. 그러나 공은 물보라를 한번 튀기더니 무언가에 맞고 기적처럼 러프로 튀어나왔다. 최경주 골프 장학생 출신인 김민규는 “SK텔레콤오픈에서 최 프로님이 아일랜드 홀에서 살아남으며 최고령 우승을 차지했던 순간이 떠오르며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민규는 두 번째 샷으로 공을 그린 위에 올리고 나서 파로 막아내며 한숨을 돌렸다. 김민규는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뽑아내며 3타차 완승을 확정했다.

장유빈(22)은 이날 6타를 줄이며 선두권을 추격했으나 강경남과 함께 공동 3위(7언더파 277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민규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골프의 전설’ 최경주가 사용하던 퍼터를 들고나와 빠른 그린을 정복했다.

김민규는 “2001년 출시된 구형 퍼터로 단종됐지만 내게는 보물과도 같다”며 “최경주 프로님의 좋은 기운을 받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오래전 물려받은 퍼터인데 올해 초반 일자형 퍼터를 찾아보던 중 차 트렁크에서 발견했는데 어드레스가 잘 나와서 곧바로 캐디백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 퍼터는 이미 효험을 입증한 적 있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서 활동하던 김민규는 코로나 사태로 한국에 들어온 2020년 군산 CC 오픈과 KPGA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바로 이 퍼터를 사용했던 것.

김민규는 2022년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하고는 그 후유증으로 지난해까지 우승을 거두지 못했다. 김민규는 이 퍼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난달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오르고, 이달 초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 정상에 올랐다.

김민규는 “퍼트가 골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퍼트가 잘 떨어지면 자신 있는 경기를 할 수 있다. 덕분에 코오롱 한국오픈에서도 자신 있는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