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종부세와 상속세와 저출생
정부와 국회가 종합부동산세·상속세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오랜 시간 이들 조세제도를 개편하지 않아 당초 도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산층’이 과도하게 세 부담을 지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투기 목적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집인데 그저 집값이 올라 종부세 폭탄을 맞았다’거나 ‘상속세가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여론이 군불을 땠다.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나오는 논의를 보면 종부세는 초고가 1주택자와 보유 주택의 가액 총합이 아주 높은 다주택자만 내도록 하고 사실상 전면 폐지하는 방안, 상속세는 먼저 공제한도를 확대한 뒤 추후 세율을 대폭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종부세·상속세 개편을 둘러싼 주된 논쟁은 이것이 세수를 줄이고 조세 형평에 어긋나는 부자 감세인지, 아니면 현재의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징벌적 과세인지 하는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더 엄중하고 면밀하게 봐야 할 것은 종부세와 상속세 부담 완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신호를 주는가 하는 점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나’ 거둬들이는가 하는 조세제도는 그 사회가 운영되는 방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 얘기가 나오는 종부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는 결국 ‘자산의 보유’와 ‘부의 대물림’을 유리하게, 쉽게 해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역시 정부가 주장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넓혀 보면 부동산이든 가업이든 주식이든 이미 자산을 가진 계층에 매우 유리한 조세제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종부세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부 공개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정치권에서 한강벨트를 사수하고 수도권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중산층’ 이상 유권자들의 민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 고성장기와 몇 차례의 집값 급등기를 거치며 현재 중산층이 자산을 불려온 반면, 이제는 청년층이 근로소득을 바탕으로 중산층에 새롭게 진입하기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산층 진입 벽은 높아진 반면, 저변은 더 이상 넓어지지 않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는 저서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자녀의 대학 진학→전문직 또는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교육을 통한 계층 세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하고, “한국의 1990년대생들은 부모가 확보한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 세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고 했다.
한국의 세습 중산층화는 정부가 최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저출생 문제와도 밀접하게 닿아 있다.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들은 주로 육아휴직을 더 편리하게 쓰게 하고, 결혼·출산할 경우 주택 대출의 소득 기준을 더 낮춰주고, 일하는 부모를 위해 돌봄 공백을 줄이는 것 등이다. 결혼과 출산 의향을 높이는 데에 주거와 일자리, 일·가정의 양립 등 경제적 조건이 중요하다는 반성에 따른 것이다.
한국의 저출생은 혼인율이 줄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면서 가속화됐다. 2011년 처음 나온 말인 ‘3포 세대’ 안에 이미 결혼과 출산 포기가 포함됐다. 결혼 건수는 2013년 32만3000건에서 지난해 19만4000건으로 급락했고,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였다.
그런데 저출생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괜찮은 일자리와 주거 환경을 획득하는 것에 타고난 요소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당장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 형편도 되지 않지만, 아이를 낳더라도 자녀가 나보다 나은 미래를 누리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는 곧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점점 어려워지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종부세와 상속세가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정부와 국회가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세제 개편에만 골몰해서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지 않고 중산층의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저출생 추세 반전의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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