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신 기증했더니 ‘해부학 강의’ 장사… 서울 주요 의대도 비일비재
사설교육업체 수년간 암암리 워크숍
체육대 교수 혼자 해부 진행… 법 위반
연대·가톨릭대 법적 미자격자가 강의
이대, 헬스 트레이너들에 수료증 발급
시신 기증 서약자들 “상상도 하지 못해
의료 목적 무관한 강의는 무례한 행동”
23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A협회는 2021년 6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여 차례 이상 카데바 해부 실습 워크숍을 실시했다. A협회는 ‘스포츠의학 전문가 양성 협회’를 표방하는 사설 교육업체로, 체육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해 왔다. 이 단체가 진행한 카데바 워크숍은 암암리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A협회가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관련 게시물을 보면 2021년 7월 진행된 3회 워크숍부터는 강의 장소와 등록비에 대해서는 일절 공개하지 않고 개별 문의를 통해서만 알려주겠다는 내용이 있다. 1·2회차 워크숍 당시에는 ‘서울 소재 의대’에서 진행된다고 기재됐다. 1·2회는 각각 15~20명을 실습 정원으로 두고, 인당 25만~30만원의 강의료가 책정됐다.
워크숍은 모두 의대가 아닌 한국체육대 소속 임상해부학 전공 이모 교수를 통해 진행됐다. 이 교수 혼자 해부를 진행했다면, 의대에 소속된 해부학·병리학·법의학 전공 교수 등에 한해 시체를 해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체해부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A협회와 이 교수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A협회는 현재 SNS와 블로그를 모두 삭제한 상태다.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카데바 해부 강의는 특정 의대에만 국한된 행태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을 촉발한 가톨릭대를 제외하고도 연세대와 중앙대, 이화여대 등 서울 주요 의대에서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유사한 강의가 각각 최소 한 차례 이상 열린 것으로 파악됐다.
연세대에서는 ‘어깨와 무릎 집중 과정 증상과 해부학적 연결고리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올해에만 네 차례 강의가 진행됐다. 법적 자격이 없는 자대 해부학교실 박사후연구원(조교)이 강의한 데다, 학교 측은 강의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가톨릭대 역시 조교수 이상의 신분이나 의사가 아닌 해부학 관련 전공자가 지난해부터 두 차례 강의를 진행해 온 사실을 파악하고, 고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다른 대학도 비슷한 상황이다. 중앙대 역시 2015년 민간업체의 신청을 받고 참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화여대의 경우 강의 참가자들에게 해부학교실 소속 한모 교수의 명의로 수료증을 발급해 왔는데, 몇몇 헬스 트레이너들이 수료증과 이대서울병원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체육 지도자 외에 미용 전공자 등을 대상으로 해부 강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광주 지역 한 대학에서 미용과를 졸업한 전모(34)씨는 세계일보에 “2011~2012년쯤 인근 의대에서 카데바 해부 실습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전씨는 “학교에서 인당 2만~3만원을 걷어 2개 학년 재학생이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며 “의대생들이 실습을 마친 카데바를 나를 포함한 미용과 학생들이 직접 메스로 해부했다. 4시간가량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대구가톨릭대에서도 피부 미용사 등을 대상자로 명시한 강의가 지난해 10월 진행된 바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대개 외부 업체가 참관 신청을 하면 학교 측 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타당성을 따진 뒤 허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해부학 교수 등이 요청할 경우 학교 측이 구체적인 용처를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측은 강의료 중 일부를 교보재 비용 등 명목으로 학교 측에 건네는 것으로 전해졌다.
체육계 일각에서는 “근육의 구조나 작동 방식에 대해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부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항변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운영되는 해외 카데바 해부 참관 프로그램이 국내에서 매년 운영될 정도로 체육 지도자들 사이에서 수요가 높다고 한다. 참가비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해외 프로그램도 있다.
현행법이 참관 자격에 대해서 제한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과도한 지적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모 의대와 연계해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는 민간단체 B협회 관계자는 “자격이 있는 의대 교수가 메스를 들고 해부를 진행하고 체육인들이 참관만 하는 방식으로, 현행법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범법자라는 프레임으로 싸잡혀서 밥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시신 기증을 결심한 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의학 연구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이번 사태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김용완(44)씨는 2012년 시신 기증을 서약했다. 김씨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받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다”며 “모친이 돌아가신 이후 내 시신을 기증하면 신약이나 치료법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쭉 생각해 왔다”고 밝혔다.
1998년 시신 기증을 서약한 40대 여성 안모씨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의대생들의 시신 해부가 어려워 실질적인 의학 발전이 이뤄지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미미한 사람이지만 어차피 죽은 몸이라도 의료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증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유료 해부 강의 논란과 관련해 안씨는 “조금이나마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시신 기증을 결심한 이들에게 (의료 목적과 무관한 유료 강의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시신이 오용될 가능성이 줄어들면 기꺼이 기증에 나서는 이들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준무·윤솔·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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