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통팔달하고 이동시간도 짧은 교통의 장점이 여행의 목적지에서는 가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천안이 대표적인 예다. 천안은 수도권 전철로 저렴하게 갈 수 있고, 빨리 가고 싶다면 KTX와 고속버스 등을 이용하면 된다. 반도의 중앙부여서 전국 어디든 접근성도 좋다. 그런데 이에 따라 오히려 여행지가 주는 설렘과 신비감은 떨어지는 손해를 본다. “천안으로 여행 가자”라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이 “뭐, 볼 게 있나”라는 반문을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의외로 우리는 가깝고 가기 편한 천안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한정적이다. 먹거리로는 호두과자와 병천 순대이고, 관광명소라면 독립기념관을 떠올린다. 하지만 천안은 여름 무더위를 식히면서 아이들과 숲의 청량을 만끽하고 액티비티도 즐기는 멋진 휴양림이 도심 근교에 있다. 시내 복판에는 깜짝 놀랄 작품들을 만나는 예술적 감흥이 충만한 조각공원이 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근현대사의 자취를 돌아볼 수 있고, 요즘 인기인 ‘빵지순례’의 강자도 있다. 이 정도면 천안 나들이를 마다할 이유를 찾는 게 힘들 것이다.
●강소형 잠재관광지, 태학산자연휴양림 휴양림은 이제는 어지간한 지자체라면 한, 두 곳 정도는 운영하는 대중적인 자연 체류형 관광명소이다. 천안에도 의외로 꽤 괜찮은 휴양림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가 올해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한 태학산자연휴양림은 해발 450m인 태학산 동쪽에 50만5498㎡ 규모로 조성해 2001년 문을 열었다. ‘강소형 잠재관광지’는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유망 관광지를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육성하는 한국관광공사의 주요 사업이다. 현재는 방문객이 많지 않지만, 체계적인 컨설팅과 집중적인 홍보, 마케팅 전개를 통해 인기 관광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관광지를 의미한다.
태학산 자연휴양림은 이름값만 따지면 전국구급 인기를 누리는 기존 유명 휴양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치나 시설 면에서 장점이 무척 많다. 우선 도심에서 가깝다. 천안역에서 차로 12분, 천안종합버스터미널에서는 30분 정도 걸린다. 천안이 수도권에서 고속철도 등의 대중교통으로 1시간 안팎이고, 시간 여유만 있다면 1호선 전철을 통해서도 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 면에서 뛰어난 접근성이다.
또한 도심에서 제법 가까운 지역인데도 그럴듯한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 숲, 산책이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3개의 등산로와 대피소, 오토캠핑장과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오토캠핑장을 확장해 피크닉테이블, 고정식 텐트 등 편의시설을 갖춘 가족 바비큐장(피크닉장) 8면도 새로 만들었다.
특히 각종 웰니스 프로그램을 한 사람이 5000원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탁월하다. ‘태학산 치유센터’에서 진행하는데 사회적 약자부터 치매, 초중고생, 노인, 가족 등 대상에 따라 내용을 달리한 ‘다원 숲’, ‘늘해랑 숲’ 등의 맞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숲길 걷기, 족욕, 아로마테라피, 싱잉볼, 꽃차 마시기, 걷기 명상, 숲속 해먹서 쉬기 등 다양한 코스를 조합해 진행하는데 “5000원으로 이 정도까지 이용해도 되나”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이다.
●숲속 짚코스터의 매력, 태조산 산림레포츠센터 해발 421m 태조산에 있는 산림레포츠센터는 충남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숲과 레포츠를 결합한 복합시설이다. 이곳 역시 접근성이 좋다. 천안역이나 천안종합버스터미널에서 차로 15분~17분 거리다. 기존 태조산 야영장을 리모델링해 조성했는데 짚코스터, 공중네트, 청소년용 숲 모험 시설, 어린이 숲 모험 시설 등이 있다.
태조산 산림레포츠센터의 간판 즐길 거리는 짚 코스터다. 길이가 510m 정도로 내려가는 낙차나 거리만 따지면 다른 곳의 비슷한 야외 액티비티보다 그다지 특출난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숲속을 지나가는 짚코스터의 레일이 좌우로 급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체감하는 스릴과 속도감은 제법 신난다. 숲속을 지나는 동안 시야에는 푸른 녹음이 가득하고, 콧속으로 나무 내음이 한가득 들어온다. 상쾌한 경험이다.
이외에 50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350㎡ 넓이의 대형 공중네트, 초등학교 6학년 이상 이용할 수 있는 22개 코스의 청소년용 숲 모험시설과 만 5세 이상 초등학교 5학년 이하 어린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10개 코스의 어린이 숲 모험 시설 등 숲에서 뛰어다니는 놀거리가 풍성하다. 연령대에 맞춰 어른부터 아이까지 골라서 즐길 수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최적화되어 있다.
● 국내 최대 청동대불의 위용, 각원사 산림레포츠센터가 있는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신검과 대치할 때 머물렀다 하여 산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은 각원사가 있다. 경해법인 조실스님이 1977년에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사찰이지만 절집의 규모도 웅장하다. 특히 국내 최고 크기라는 야외 불상이 유명하다.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로 좌대 지름이 10m, 좌대와 불상 전체 높이가 15m다. 수치로 설명하는 것 보다 실제로 눈앞에 마주하면 크기가 주는 위엄에 압도당한다. 중층 누각 태조산루에 걸려있는 ‘태양의 성종’ 도 유명하다. 무게가 20톤에 달한다. 34개의 주춧돌과 100여 만재의 목재를 쓴 대웅보전은 전면 7간, 측면 4간 규모로 국내 목조 건축물 중 가장 큰 법당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조각 광장 시내 한복판, 예전에 버스터미널이었던 대형 백화점 앞에 있는 광장이다. 일단 이곳에 오면 가장 먼저 “이것이 왜 여기에 있지”라는 놀라움과 궁금증이 생긴다. 아라리오갤러리 조각 광장은 국내외 작가들의 예술 작품 30여점을 전시하는 미술 공원이다.
이곳이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전시하는 작가들의 면면 때문이다. 현대예술 작가 중 지명도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해 키스 해링, 수보드 굽타, 코헤이 나와, 아르망 페르난데스, 브래드 하우 등 해외 유명 갤러리에서나 만날 것 같은 작가들 작품이 사람과 차가 옆을 지나가는 개방된 공간에 스스럼없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해외 작가 외에 최정화, 성동훈, 김인배 등 국내 주요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엄청난 아트 컬렉션의 주인공인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이 ‘씨 킴’(CI KIM)이라는 작가명으로 발표한 작품과 개인전도 이곳에서 접할 수 있다.
특별한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 검색과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과 안내 팸플릿 하나를 들고 광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앞에 설치한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를 국내에서 편하게 공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결코 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