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푸른 바다 앞에 첫 소녀상···또 훼방 놓는 일본
일본 대사관 “비문 문구 사실과 달라” 억지 주장
이탈리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설치됐다. 소녀상 건립에 반대해온 일본 정부는 소녀상 비문 내용이 “편향적”이라며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 스틴티노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고 밝혔다. 소녀상은 스틴티노 시청에서 약 200m 떨어진 공공부지에 세워졌다.
제막식에 참석한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가) 한·일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한다”며 “(이 소녀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젠더 폭력에 맞서는 투쟁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도 이 자리에서 “전시 성폭력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움으로써 비극적인 전쟁의 피해를 본 모든 여성의 고통의 외침에 연대하게 됐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자 유명한 휴양지인 사르데냐섬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현지 정치인과 시민단체 활동가, 주민 등 약 200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현지 합창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한국 민요 ‘아리랑’을 제창했다.
유럽에서는 독일 베를린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사르데냐섬의 소녀상은 이탈리아에 한국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매체 ‘코탈리아’의 편집자 로사마리아 카이아자가 스틴티노 시청에 요청하면서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과 관련해 딴지를 걸고 있다. 사르데냐섬 지역지 루니오네사르다는 스즈키 사토시 주이탈리아 일본 대사가 지난 20일 스틴티노시를 방문해 발레벨라 시장에게 “일본이 과거 범죄에 대해 사과했고, 피해 보상 지급 절차를 밟고 있다”며 제막식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대사관은 비문 문구가 사실과 다르다고도 항의했다.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수많은 소녀와 여성을 강제로 데려가 군대의 성노예로 삼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며 소녀상을 철거하려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발레벨라 시장은 일본 측의 제막식 연기 요청을 거부했다. 다만 일본 교도통신은 발레벨라 시장이 “한국의 일방적 입장이 적혀있다”며 “비문 문구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22일 보도했다.
하지만 정의연 측은 발레벨라 시장이 “소녀상은 전 세계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성폭력을 상기한다”며 “비문 수정이나 소녀상 철거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2020년 9월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도 일본 정부의 방해로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미테구청은 설치 직후 일본 정부가 소녀상 옆에 적힌 비문이 “사실에 반한다”며 항의하자 소녀상 철거를 명령했다. 이후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철거는 임시보류됐다. 최근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소녀상과 관련해 “더는 (한국의) 일방적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철거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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