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증세 멈춰라” 케냐 청년들 거리 시위…강경 진압에 2명 사망
29세 남성도 허벅지 총상으로 숨져
아프리카 케냐에서 정부의 증세 법안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20대 청년 2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일간 더네이션이 보도했다.
22일(현지시간) 케냐 인권위원회는 “21세 청년 에반스 카란투가 지난 20일 나이로비에서 시위를 하던 중 최루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면서 “단지 높은 생활비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청년이 목숨을 잃는다는 건 비극”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위에 참여한 29세 남성이 전날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숨진 데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사망자다.
케냐에서는 지난 18일부터 정부의 새로운 증세 법안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윌리엄 루토 대통령이 800억달러(약 110조원)에 이르는 국가 부채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세금 인상을 추진한 데 항의한 것이다. 특히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품목인 자동차와 빵, 식용유 등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등을 올리기로 한 점이 분노를 키웠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건 청년들이었다. 케냐에서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강한 청년 세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위를 이끌어 주목을 받았다. ‘의회를 점령하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청년 시위대는 “우리는 경제 독재에 반대한다”, “루토는 물러나라”고 외쳤다.
케냐의 조세 정의 활동가인 스텔라 아가라는 “긴축 정책을 펴온 정부가 가장 가난한 시민들을 겨냥한 증세까지 시행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면서 “많은 이들이 청년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정부의 무심한 결정으로 부모님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반발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빵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자동차세 등 일부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부족한 예산 만큼 소비세와 도로유지세 등 다른 세금을 인상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위대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나이로비 의회 인근에서 수백 명 규모로 시작된 시위는 최소 19개 도시로 확산했고, 수천 명의 청년이 거리로 나와 증세 법안을 전면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22세 대학 졸업생 벨라는 “정부는 빵에 부과하던 세금을 다른 곳에 추가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전술일 뿐”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당국의 강경 진압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했으며, 일부 지역에선 실탄을 사용해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인권위원회는 전국에서 최소 335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에 독립경찰감독기관(IPOA)은 경찰이 시위대에 총기 등 무력을 사용했는지 조사 중이다.
한편 정부의 증세 법안을 심의 중인 케냐 의회는 오는 27일 법안을 최종 표결한다. 시민들의 반발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표결에 앞서 일부 조항을 더 수정할지도 논의 중이라고 현지 매체 더 스탠더드는 전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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