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예능에 이어 다큐까지···방송사는 지금 ‘AI 실험’ 중

최민지 기자 2024. 6. 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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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위대한 인도>에서는 인도 역사 속 인물들이 생성형 AI를 통해 재현된다. EBS 제공

인드라는 날씨와 전쟁을 관장하는 힌두 신화 속 신이다. 번개 모양의 무기 금강저를 휘두르는 인드라는 넘치는 카리스마로 ‘신들의 왕’이라 불린다. 그런 인드라가 화면 밖 시청자를 향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면?

24일 방송되는 EBS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에서는 상상 속 장면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다. 시청자를 놀라게 할 이 장면들은 인간이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솜씨다. 뉴스,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생성형 AI가 활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9일 언론 시사에서 미리 공개된 다큐멘터리에서는 AI로 완성된 흥미로운 장면들이 눈길을 끌었다. 성우 대신 AI가 인도 신화와 역사 속 인물을 연기한다. 프리젠터인 서울대 강성용 교수·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얼굴을 한 캐릭터들은 인도의 군무 맛살라를 추며 맛깔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인간 성우의 목소리를 덧입히고 무용수들이 춤추는 모습을 찍어야 완성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제작진은 초기 단계부터 생성형 AI 활용을 염두에 두고 기획안을 짰다. 인도 문명이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예능 보듯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드는 데 방점을 뒀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한상호 PD는 “과거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비용 효율적으로 가능해졌다”며 “연극, 뮤지컬 같은 공연을 다큐에 녹여내고 싶었던 오랜 바람도 AI가 가능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MBC가 선보인 <PD가 사라졌다>는 세계 최초로 AI PD를 전면에 내세웠다. MBC 제공
KBS <싱크로유>는 AI와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듣고 진짜 가수를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파일럿으로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하반기 정규 편성이 확정됐다. KBS 제공

방송사들의 ‘AI 실험’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MBN이 2020년 국내 최초로 AI 앵커를 등장시킨데 이어 지금은 CJB 등 다수의 지역민방이 AI 앵커를 통해 뉴스를 전하고 있다.

예능은 AI를 가장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 분야다. 2020년 터틀맨, 김광석 등 세상을 떠난 가수를 AI로 복원한 엠넷 <AI 음악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AI가 아예 PD가 되어 캐스팅과 연출, 진행, 편집을 도맡는 프로그램 <PD가 사라졌다>(MBC)까지 나왔다. 제작과정 전체를 책임지는 PD 역할을 사람 대신 AI가 맡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3월 KBS가 선보인 <김이나의 비인칭시점> 은 AI 기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다. KBS는 오는 하반기 AI와 가수가 부른 노래 중 진짜 인간 가수의 노래를 가려내는 AI 음악 버라이어티 <싱크로유> 방송도 앞두고 있다.

AI를 전면에 내세운 이런 실험들이 성공적이라 평가하긴 이르다. 대부분의 방송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조기 종영했고, 고인의 모습을 AI로 불러낸 <AI 음악 프로젝트>는 ‘첨단 기술로 고인을 재현해도 되는가’ 하는 윤리적 질문을 남겼다. 세계 최초로 AI PD를 내세운 <PD가 사라졌다>의 경우 신선한 콘셉트로 주목받았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진행으로 큰 재미를 선사하지 못하며 ‘AI는 예능 PD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역설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 지상파 PD는 “아직은 콘텐츠의 질보다 시도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보는 편”이라며 “업계 최대 화두인 AI를 접목시킨 아이템은 정부 기관 협찬 등을 통해 제작비를 끌어오기 용이하다보니 꾸준히 시도가 이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가 미래 방송 제작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으리라는 전망엔 방송가의 이견이 없다. 각 방송사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채비에 나서고 있다. 특히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적자 폭을 줄이는 데 AI가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한상호 PD는 AI의 가능성에 대해 “앞으로 인도 현지에 직접 촬영 자체를 갈 필요가 없어지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방송 종사자들이)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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