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앵과 뉴스터디]“삼성 양자, 박정희 비선” 허경영, 선거판에서 ‘10년 퇴출’

동정민 2024. 6. 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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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선거 못 나오는 허경영, 왜?

안녕하세요. <동앵과 뉴스터디> 동정민 앵커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이 사람 안 나오나’ 좀 궁금해지기도 하죠.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이자 종교시설 하늘궁 대표. 공중부양과 축지법을 쓴다는 이분, 많은 분들이 관심은 있습니다.

그런데 허경영 씨가 앞으로 2034년 4월까지 선거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본인 주장으로는 지금 나이가 1950년생, 74세. 2034년까지면 84세까지 선거를 못 치르는 겁니다.

그러면 왜 선거권이 박탈됐느냐? ‘허위사실 유포’ 혐의 때문입니다. 이 혐의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 유죄를 받았습니다.

허경영 씨가 지금까지 선거에 몇 번 나왔는지 아십니까? 제일 처음 나온 선거가 1991년 3월 지방선거 기초의원. 1991년 6월 또 지방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바로 대선으로 갑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1997년 12월 출마, 2004년에는 공화당 비례후보로 총선에 출마합니다. 2007년 12월 또 대선이 출마하고, 4년 전 총선 때 국가혁명배당금당 비례후보로 선거 나왔다가, 그 다음해 2021년 4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 대선에도 나왔습니다.

지난 대선 때, 허경영 씨의 이 발언 기억나십니까? “나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양아들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역이었다”는 말. 들어보신 것 같죠? 왜냐하면 한 번 얘기한 게 아니라 강연‧저서‧방송 등을 통해 12번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KBS 대선후보 방송연설에서 허경영 씨는 “내가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산업을 건의해서 삼성전자를 키우는 데 조언을 하고,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소개하면서 내가 박정희 대통령 정책보좌역이 됐는데, 새마을 운동이 내 아이디어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때도 사실은 뭐 믿는 분들이 많지는 않으셨을 것 같지만, 이 발언으로 허위사실 유포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가 됐고, 재판해서 결과적으로 다 허위로 판결이 난 겁니다.

그러면 재판에서 허경영 씨가 “내가 양아들이다, 박정희 비선 정책보좌역이다”에 대한 근거를 댔을 텐데, 어떤 걸 들고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또, 재판부는 왜 허경영 씨가 낸 근거를 믿지 않고 ‘허위’라고 결론 내렸을까요? 제가 허경영 씨에 대한 이 판결문을 쫙 읽어봤습니다. 팩트만 전해드리겠습니다.

▶허경영 “난 故이병철 양아들”…재판 결과는?

허경영 씨는 선거 쭉 나오다가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선거에 출마를 하지 않는 ‘공백’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2020년 총선부터 선거판에 막 나옵니다.

왜 공백이 있었느냐? 지금과 똑같습니다. 이때도 허위사실 유포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가 됐고, 재판 거쳐서 똑같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됩니다.

그러면, 2007년 대선 때는 무슨 허위사실을 공표했던 거냐? 비슷합니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사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본선보다 더 치열한 한나라당 대선경선을 치렀죠.

그 대선 때, 허경영 씨는 “내가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보좌역 역임했을 당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와 결혼하기로 박정희 대통령과 약속을 했다” 이런 얘기를 비롯해 “내가 이병철 회장의 양자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 참모였다”는 말도 해요. 부시 미 대통령하고 같이 찍었다는 사진도 뿌렸는데, 이거 합성으로 밝혀졌죠.

재판에서 다 허위로 판결 받으면서, 당시 10년 동안 선거에 못 나오게 된 겁니다. 근데 그때와 같은 얘기를 이번 대선 때 또 들고 나온거죠. “이병철 양자고, 박근혜 비선이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힙니다.

하지만, 허경영 씨는 재판에 나와서 끝까지 “내 말이 맞다”고 합니다. 그러면 증거를 대야죠.

허경영 씨가 꺼낸 증거 1번은 이겁니다. “14촌 숙모다”. 누가? “이병철 회장의 둘째 누나가”.

일단 ‘14촌’부터 좀 복잡해집니다. 어디까지 가면 14촌인지 보니, 법적으로는 8촌까지를 친족으로 합니다. 8촌이면 할아버지 형제의 자식들까지 하면 8촌입니다. 그러면 14촌이 되려면? 고조부의 자식들까지 가도 12촌이더군요.

허경영 씨의 주장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누님이 자신의 ‘14촌 숙모’라는 거예요.

찾아보니까 일단 이병철 전 회장에게 누나가 있었던 건 맞는 것 같아요. 허경영 씨는 “이병철 회장의 이 둘째 누님이 우리 집안에 숙모로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병철 전 회장이 어릴 때 우리 집안의 옆집에 살았다는 거예요. 그니까 집안끼리 잘 안다는 식이죠. 이병철 전 회장이 그 집에 살면서 지수보통학교를 나왔는데 본인도 그 학교 나왔다는 겁니다. 이병철 전 회장이 1회 졸업생. 본인은 같은 학교 38회 졸업생. 그래서 19살 때 자기 초등학교 선배이자 집안 관계가 있는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로 들어갔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증거로 뭘 냈냐면, 본인이 ‘진주 지수보통학교’에 다닌 학적증명 자료를 냅니다. 이병철 전 회장도 이 지수보통학교에 다녔다는 내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입니다. 더 이상은 뭘 내놓지 못합니다. 같은 학교에 다녔어도 1회와 38회 세대차이도 크죠. 재판부는 이것 만으로 어떻게 양자라는 게 성립할 수 있냐며 증거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허경영 씨가 증인도 내세웁니다. 이 증인의 법정 진술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재벌기업 회장들을 쫙 청와대로 불렀는데, 그때 이병철 회장이 1910이라는 번호판이 있는 벤츠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이때 허경영 씨와 같이 왔다는 거에요.

“허경영 씨가 돈 가방을 들고 청와대에 나타났다. 근데 청와대 내부에서 사람들이 이 허경영 씨를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이라고 부르더라” 라고 증언 합니다.

법원은 “이거 확인이 불가하다”고 판단해요. 이 말을 어떻게 확인하며, 어떻게 양아들로 확신하냐는 거죠. 이 증인이 누군가 봤더니, 허경영 씨 선거를 도왔던 사람이자, 허경영 씨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던 사람이예요. 선관위 조사에서 증인이 직접 이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확인되지 않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언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허경영 “박정희의 비선 정책보좌”…실상은?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비선 정책보좌역이었다”는 이 발언은 조금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왜냐? 일단 법원에서 살펴봅니다. 비선 정책보좌역이라는 자리가 있었느냐? 봤더니 비슷한 자리가 있었다는 겁니다.

과거사 위원회가 자료를 봤더니 1970년대 초반에 학교, 대학생, 교수들을 사찰하려는 비밀 요원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시 비선이 있었다” 여기까지 된 거예요.

두 번째 허경영 씨는 군생활 할 때 2급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아죠. 뭔가 비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이 된 거죠.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뭐가 있어야 돼요? 박정희 대통령이 허경영 씨를 이 자리에 임명했다는 게 있어야 되죠. 비밀 취급 인가는 있고, 그런 자리는 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허경영 씨가 갔다는 게 증명이 안 됩니다.

허경영 씨는 증거로 ‘병적기록표’를 냅니다. 여기에 학력이 허위로 적혀 있거든요. 허 씨는 “내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학력을 허위로 적어냈다”고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죠.

허경영 씨는 비선 정책보좌역으로 본인이 ‘새마을 운동’을 자기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죠. 재판부가 1969년~1978년까지, 비선 정책보좌역을 했다는 10년간의 <대통령 의전 일지>를 다 확인합니다. 그런데, ‘허경영’이라는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이 새마을운동이라는 건 당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였죠.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이 대통령 의전일지에도, 새마을운동 보고서에도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재판부는 “기록이 전혀 없다.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거기다가 허경영 씨가 졸업증명서‧생활기록부‧학적부 등 학력자료를 다 제출합니다. 거기 보면, 1969년에 서울 협성고등공민학교라는 야간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서울 협성상업전수학교란 상업고에 입학을 합니다.

허경영 본인은 1969년부터 ‘비선 정책보좌역’을 했다고 하지만, 1969년 학력이 중졸인 거죠. 그리고 본인이 1950년생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1969년이면 19살 때부터 비선 정책보좌역을 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재판부가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하자, 허경영 씨가 증인을 여러 명 내보냅니다.

한 증인이 나와서 이렇게 말해요. “본인이 박정희 대통령 초대 받아서 청와대 갔었고, 양복 차림의 젊은 남성을 보았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허경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이게 다입니다. 재판부는 믿기 어렵다고 봐요.

박정희 대통령 형의 외손자가 또 증인으로 나옵니다. 이 증인도 허경영 씨를 봤다고 말해요. “초등학생 시절인 1971년경 내가 한두 번 허경영을 봤습니다. 근데 1990년대 들어서 허경영이 나를 먼저 알아봤고, 본인도 허경영 말을 듣다 보니까 1971년경 경호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 허경영인 걸 알게 됐다”고요.

재판부는 불확실하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허경영 씨는 정책보좌역으로 새마을운동 등을 제안했다는 건데, 경호 업무를 수행했다는 증언과도 맞지 않는다고요.

1963년~1975년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호관도 나와서 증언을 해요. “1970년인가 71년인가에 3~4번 정도 허경영이 청와대로 온 적이 있다. 비공식 정보원 중 한 명이라고 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만나고 간 건지는 난 모른다”

그러니까 뭔가 ‘허경영 씨가 청와대에 출몰한 것 같다’는 증언까지는 나왔는데 그 이상은 확인이 안 되는 거죠. 지금 확인해야 될 건 박정희 대통령이 허경영 씨를 정책보좌역을 시켰냐, 안 시켰냐. 이게 허위냐 아니냐를 가려내는 거잖아요. 결국 재판부는 “이 내용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허위로 보인다”고 판결합니다.

▶10년간 허경영 출마 막은 법원, 왜?

허경영 씨의 공약과 주장들 보십시오. “내 IQ는 430”, “유엔 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하겠다” , “중범죄자들을 몽골 사막으로 보내겠다”, “국회의원 100명, 월급도 없애겠다”, “대통령 월급 안 받겠다”, “나라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다”, “국민배당금을 월 150만 원씩 지급하겠다”, “부자는 벌금을 더 많이 내게 하겠다”, “결혼 수당 1억 원을 주겠다” 등등. 우리 정치권들이 얼마나 못하면, 사람들이 이런 얘기에 넘어가서 선거 때 허경영 꽤 많이 찍잖아요.

법원은 허경영 씨에게 일침을 남기며 10년간 선거권을 박탈합니다.

“과거에 같은 잘못 저지르고도 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똑같은 범죄로 선거를 혼탁하게 하고, 앞으로 또 이럴 가능성이 높다. 정치의 영역에서 피고인 허경영을 배제시킬 필요가 있다”. 선거판에서 당분간 허경영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거죠.

복잡한데 궁금한 이슈,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대신 풀어드리겠습니다.

아시죠? 평일 오후 7시엔 <뉴스A>, 주말 오후 3시엔 <동앵과 뉴스터디>.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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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동정민 기자·김정연 작가
연출: 황진선PD
편집: 허수연‧박현아PD

동정민 기자 ditto@ichanne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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