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우유, 가격은 세계최고

김수연 2024. 6. 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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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윳값, 4년동안 18%나 치솟아
수요공급 무시한 가격결정구조
소비자가 보조금 지불하는 셈
의존적 낙농업 지속가능 못해

우유는 남아도는데 원유(原乳) 가격은 오르는 우유 유통시장의 왜곡이 계속되고 있다. 우윳값은 지난 4년 새 18%나 치솟았다. 2020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국은행 소비자물가상승률(13.7%)을 웃돈다. 국내 원윳값은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낙농진흥회가 정하는 구조다.

원윳값 결정을 위한 논의가 지난 11일 시작됐다. 낙농진흥회는 이사 7명으로 원윳값 협상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올해 낙농업계는 생산비 상승 등을 감안해 26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 결정된 원윳값은 오는 8월 1일부터 반영된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는 고물가 주요인 중 하나는 농축수산물의 왜곡된 유통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와 관계없이 생산자 보호라는 명분 때문에 가격이 왜곡되는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사과 등 몇몇 품목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원윳값은 이 총재 지적의 한가운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원유의 사용 용도별 차등가격제 운영 규정'에 따라 사료비 비중이 60% 이하인 경우, 생산비 증가분(44원)의 -30~60% 범위 내에서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지난해 사료비는 588원으로 18원 올랐기 때문에 생산비 증가분에서 비중은 40.9%로 이에 해당한다.

유업계와 유가공업계는 낙농진흥회가 결정한 가격에 울며겨자먹기로 매입할 수밖에 없다. 의무매입 쿼터 때문이다. 비싸게 매입한 원유는 우유는 물론 빵, 과자, 치즈 등 다양한 식품의 원료로 쓰인다. 비싼 원윳값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가 낙농가에 보조금을 지불하는 꼴이다. 흰우유는 소비 감소로 매입량을 다 소화할 수 없어 고형분으로 만들어 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싼 원유를 매입해야 하는 유업계와 유가공업계에 정부가 투입하는 보조금 또한 늘어나고 있다. 농림부의 '2024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를 보면, 정부가 국산우유 지원에 투입하는 예산은 2023년 800억원대에서 2024년 900억원대로 대폭 늘었다. 세금으로 비싼 원윳값 매입에 따른 손해를 보조해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2023년 용도별 원유가격 인상에 따라 유업체의 원유 구매 부담 절감을 위해 단가 인상분에 대한 차액지원을 늘리고, 국산 원유를 활용한 유제품 생산기반 확대를 위해 예산이 증액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원유 수급대책 수립을 위한 낙농통계관리 시스템 운영 등에 투입되는 예산이 지난해 4억여원에서 6억원으로 증액됐다. 또 생산자단체의 수급 수급안정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우유자조금 51억원도 있다. 별도로 학교 우유급식을 위해 465억원을 보조해준다.

우유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정부는 쿼터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원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현재 유업계에 부여된 쿼터는 222만톤으로, 이 중 실생량인 205만톤이 유업계에 할당돼 용도별 차등가격제(음용유와 가공유의 가격을 달리하는 제도)가 적용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생산자와 수요자간 협상을 통해 쿼터 물량이 결정될 예정이다. 유업계는 쿼터로 인한 잉여 원유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오경환 한국유가공협회 전무는 "수요가 증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유업체의 원유 구매량을 줄이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원유가 남고, 남는 원유를 건조 시켜 분유로 만들어 쓰는데, 저렴한 외국산 분유와 경쟁하려면 1000원짜리 원유를 사서 500~600원으로 떨어진 가격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유 생산비를 보전해주니 낙농가는 원유를 과잉 생산하게 된다. 구조조정 유인이 생기지 않는다. 정부의 원윳값 안정정책은 쌀처럼 원유를 전략농산물로 지정하고 일정 수준의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과연 원유 생산·유통·소비를 정부가 나서서 관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쌀처럼 국내 원유 생산단가가 높은 것은 사실이고 보호할 필요는 있지만, 시장기능에 맡기지 못할 만큼 원유가 전략 식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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