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김정은의 새로운 세계 질서? [세계의 창]

한겨레 2024. 6. 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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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그들의 동맹 관계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에 관해서도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유사성과 별개로 북·러는 급성장하는 관계로 구체적 이익을 얻고 있다.

그래서 이 새로운 동맹은 단순히 아웃사이더들의 동맹이 아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점에서 이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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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고 있다. 평양/타스 연합뉴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그들의 동맹 관계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에 관해서도 새로운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니다. 푸틴은 서구에 등을 돌리고 동쪽에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김정은은 통일을 포기하고 러시아를 더욱 유력한 경제·군사적 협력 상대로 보고 있다. 냉전 시대에 북한과 소련은 가까운 동맹이었지만 1990년대 이후 두 나라가 그런 로맨스를 부활시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소련 붕괴 뒤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행을 실험했다. 북한은 경제 붕괴와 기아에 빠져들었다. 북한은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여야 했으나 서구의 의도에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북·러는 어려운 시기를 벗어나면서 서구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구는 러시아 경제 붕괴에 일조하는 조언을 제공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동진하는 가운데 러시아를 하위 안보 파트너로 취급했다. 서구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당근을 내밀었지만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또 서구는 북한 엘리트들에게 정권교체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인권 어젠다를 추진했다.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북·러는 경제 구조도 비슷해지고 있다.

불안정한 민주주의를 유지했던 러시아는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 된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독재 국가가 됐다. 북한은 왕조적 체제를 거의 80년간 유지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유사성과 별개로 북·러는 급성장하는 관계로 구체적 이익을 얻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포탄 수백만발을 공급했다. 포탄의 절반은 너무 오래돼 쓸 수가 없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열세를 느끼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북한은 대가로 식량, 에너지, 위성 그리고 아마도 핵무기와 관련된 기술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양자 관계는 군사 동맹 수준으로 발전했다. 또 양국은 “정의롭고 다극화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다극”은 냉전 시대의 양극 체제나 탈냉전 시대 미국 일극 체제의 대안을 뜻한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상으로 대표되는 다극 체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구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 등을 뜻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다극 체제는 특히 러시아의 영향으로 법치, 유엔 헌장 및 후속 조약에 명시된 권리, 일부 원칙을 특정 국가의 선호보다 우선한다는 개념 등에 대한 도전을 뜻하게 됐다.

북·러는 이미 이란, 시리아, 니카라과 등과 연계하고 다른 국가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아직은 이런 축이 임계 수준 근처에 이르지는 못했다. 러시아는 중국을 끌어들이고 싶겠지만 중국은 이런 규칙 위반자들을 전적으로 편들기에는 현재의 글로벌 질서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한 상태다.

북·러는 대안적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 상황을 더욱 교란시키는 것을 고려하는 것 같다. 김정은은 최근 남한에 대한 위협적 수사를 강화하고 통일 노력의 상징인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다시 남침한다면 자살적 행위가 될 테지만,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듯 국가란 종종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한다.

아마 북·러는 시간을 두고 더 많은 동맹, 특히 중국 같은 나라를 동맹으로 끌어들이기를 바랄 것이다. 헝가리와 네덜란드 등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부상했고, 미국에서도 그런 인물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서구는 북·러 같은 새로운 축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분열돼 있고 고립주의에 빠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자국과의 관계를 끊고 있는 서구와 갈라설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새로운 동맹은 단순히 아웃사이더들의 동맹이 아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점에서 이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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