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구를 지켜 주세요”…‘폐페트병 유니폼’ 입고 축구하는 아이들
주말인 지난 15일 오전 광주광역시축구협회 주최 7대7 유치부 축구리그가 열린 광산구 한 야외 축구경기장에서 4명의 아이가 상대 팀 7명을 상대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공을 잡기만 하면 여러 명이 달려들면서 빼앗기기 일쑤였고, 골키퍼는 쉴새 없이 날아드는 공을 막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결과는 8대 0 완패.
이 팀은 애초 출전하기로 돼 있었던 3명의 아이가 급작스러운 사정으로 출전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선수가 부족한 까닭에 생긴 패배여서 아쉬워할 법도 했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이들의 가리킨 상의에는 ‘1.5℃’라는 로고가 있다. 1.5℃는 파리기후협약에서 정한 온도 상승 저지선이다. 이 축구복은 버려진 페트병 13개를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졌다. 등 번호 5번 김가윤양(6)은 “다른 친구들도 우리와 같이 지구를 지키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가윤양이 활동하고 있는 팀은 ‘기후위기를 타개하자’라는 의미를 담은 ‘태클씨씨(Tackle Climate Crisis)’다. 이번 리그에 출전한 광주지역 8개 팀 중 유일하게 서로 다른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14명이 모여 만들어진 연합팀이다.
태클씨씨는 지난 4월 창단했다. 유아 관련 교육 사업가이자 변호사인 주재헌 현 태클씨씨 대표(40)의 역할이 컸다. 서울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던 주 대표는 2018년 영국으로 건너가 환경법을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생활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후 주 대표는 광주환경운동연합과 체육시민연대, 한국사립유치원협회 광주지회, 스포츠 교육·컨설팅 업체인 이스포우스 얼스 등에 ‘환경문제를 알리는 어린이 축구단을 만들어 보자’며 제안했고, 그 결실이 태클씨씨다.
여느 축구팀처럼 감독과 코치도 있다. 주 대표는 아이들의 포지션 정하고 전략을 구사하는 감독을 하고 하고 있다. 주 대표는 한때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자문 변호사를 맡을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다. 사진작가이자 7부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조호현씨(27)가 재능기부로 코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태클씨씨는 창단한 지 두 달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김시우군(7)의 어머니 최문정씨(43)는 “페트병에 음료를 넣어서 주면 아이가 ‘지구를 생각해야 한다’며 다시 텀블러에 담아 달라는 요구를 한다”며 “아이로 인해 쓰레기의 분리배출이 더 엄격해졌다”고 말했다. 김가윤양(6)의 아버지 김현씨(41)는 “아이가 평소 밥을 잘 먹지 않았는데 활동량 때문인지 이제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성격도 많이 활발해진 것 같다”고 밝혔다.
태클씨씨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다. 주 대표는 “냉·난방 온도 낮추기, 물 티슈 적게 쓰기 등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에는 큰 도움이 된다”면서 “태클씨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등 지속해 활동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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