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옴팍한 문화마을…걸음마다 김유정 숨결 가득

황지원 기자 2024. 6.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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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마을] (10) 강원 춘천 ‘실레마을’
생가터에 문학촌 조성…박물관·책방도
마을 전체가 ‘봄봄’ ‘동백꽃’ 등 소설무대
문학축제·문학상 개최…연간 6만명 방문
안내원 설명 듣고 작품 재해석 연극 관람
강원 춘천 실레마을엔 김유정 문학촌을 비롯해 문학을 주제로 한 여러 볼거리가 있다. 문학촌 내 김유정 생가와 소설 ‘봄봄’ 속 장면을 재현한 동상.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20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김유정이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고향인 강원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을 표현한 글이다. 실레마을에서 태어난 김유정은 6살 때 가족과 서울로 이주했다가 22살에 다시 실레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실레마을에 야학당을 세우고 여러 사람과 어울렸는데, 이때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봄봄’ ‘동백꽃’ 등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금병산 자락에 있는 실레마을은 150여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김유정과 문학이라는 주제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실레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02년 김유정 생가터에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이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들어서면서다. 문학촌에선 매해 10월 열리는 ‘김유정문학축제’를 비롯해 6·9·10월 주말에 펼쳐지는 공연,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문학상 등을 운영하며 연간 6만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서울에서 김유정 문학촌을 찾은 오진태씨(33)는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익숙한 김유정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김유정 문학촌 안에 세워진 동상. 29년밖에 안되는 그의 삶은 짧았지만 작품은 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김유정 문학촌이 탄생하는 데엔 전상국 소설가(84)가 큰 역할을 했다. 전 소설가는 1980년대초 대학원을 다니면서 김유정을 알게 되고 그의 작품 세계에 빠졌다. 1985년 강원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실레마을에서 김유정의 작품 속 장소를 찾아보고, 그를 알고 있는 마을 원로들과 가족들을 만나며 김유정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춘천시에 김유정 기념관을 세우자고 지속해 건의한 결과 문학촌이 생겼고, 그가 초대 촌장을 맡았다. 전 소설가는 실레마을과 금병산 곳곳에 ‘봄봄길’ ‘동백꽃길’ 등 김유정 작품명을 딴 이름을 붙였다. 이 길들이 모여 마을을 빙 두르는 ‘실레이야기길’이 만들어졌다. 전 소설가는 “문학관이 아닌 문학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활판인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과인쇄박물관.

실레이야기길을 걷다보면 김유정과 그의 문학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공간을 여럿 만날 수 있다. 2015년 문을 연 ‘책과인쇄박물관’도 그중 하나다. 이곳에선 활판인쇄 과정을 배우고, 원하는 활자를 직접 골라 조판한 후 종이에 인쇄하는 체험까지 할 수 있다. 2017년 케이블TV tvN의 인기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소개되고 나선 한해 3만명이 다녀갔다. 전용태 초대 관장은 김유정의 작품을 활판인쇄로 찍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활자를 골라 판을 만든 후 판에 잉크를 묻혀 한쪽씩 인쇄한 정성 가득한 책은 쪽마다 각기 다른 농담(濃淡, 짙음과 옅음)을 자랑하며 아날로그 감성을 물씬 풍긴다.

극단 ‘문화프로덕션 도모’는 2021년 실레마을에 극장 ‘아트팩토리 봄’을 열고 김유정 작품 7편을 재해석한 연극을 선보였다. 지난해엔 6000명 이상의 관객이 찾았다. 실레마을 주민에겐 입장료를 받지 않아 농촌 어르신들도 문화생활을 누리게 됐다. 임순희 도모 사무처장은 “젊은 배우들이 동네를 뛰어다니며 훈련하고, 주민들에게 공연을 홍보하며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어선숙 마을 전문 안내원(도슨트)이 실레책방에서 손님들에게 김유정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마을을 좀더 자세히 둘러보고 싶다면 어선숙 마을 전문 안내원(도슨트)을 찾아가보자. 어 도슨트는 관광객과 실레마을을 함께 걸으며 김유정의 문학,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소개한다. 어 도슨트의 또 다른 직업은 책방 대표다. 실레마을에 귀촌한 그는 ‘이런 곳에 책방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실레책방’을 냈다. 책방에선 김유정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매월 한차례씩 열린다. 어 도슨트는 마을의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마을 콘텐츠를 발전시킬 방법을 찾는 ‘실레문화체험협동조합’의 일원으로도 활동한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이 실레마을에 와서 추억을 쌓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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