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사건 트릴로지 ③: 누구를, 왜 지키려고 했던 걸까
정권 위협할 정도로 커진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사실이면 범행 동기도 문제
박정훈 측 '임성근 구하기 있나' 의심
임성근 "대통령 내외와는 친분 없다"
편집자주
다시 여름이, 그리고 장마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7월 집중호우 때 해병대 병사가 거친 물살에 휘말려 순직했습니다. 그 죽음의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바로 '채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터졌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직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지난해 7월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채 상병 순직 후 군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고, 해병대 수사단은 왜 사단장을 입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누가 과연 수사단의 시도를 무력화시키려 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채 상병 사건에 관해 잘 모르셨다면, 한국일보의 트릴로지 기사만 보면 전모를 다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토요일과 일요일로 나눠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이번 회차는 3부작으로 이뤄진 전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앞선 두 기사에서 ①병사의 사망 경위를 밝히는 수사가 갑자기 항명 사건이 된 경위 ②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전개된 과정을 알아봤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1713370001482)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108100004811)
3부작의 마지막은 '도대체 왜 대통령실과 국방부, 해병대 수뇌부들이 한몸처럼 나서 박정훈 대령의 수사 결과(해병1사단장 등 8명을 책임자로 지목)를 바꾸려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의혹의 '동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특히나 이렇게 권력 수뇌부가 개입된 권력형 의혹의 경우엔, 문제 행동과 관련한 동기와 지시가 없을 수 없다. 보통은 권력형 의혹의 등장인물들은 △거스를 수 없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숨겨진 이권이나 밀착 관계에 따라 △또는 무언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것(권력·이권 등)이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 재판에서 나온 관련자의 통화기록 덕분에, 지난해 7월 말에서 8월 중순 사이 대통령실·국방부·해병대 수뇌부가 언제 어떤 식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는지는 대부분 수면 밖으로 드러났다. 남은 것은 그들이 그 연락 과정에서 어떤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야 했는지다. 바로 이게 앞으로 남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사단장을 빼야 했던 이유는
윤석열 정부는 채 상병 사건으로 인해 큰 곤욕을 겪었다.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고, 최근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이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과 관련이 높다. 그 덕에 다수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이용해 '채상병 특검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이 이렇게 정권의 위기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지적했듯, 군 수뇌부가 해병대 조사단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그냥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냈으면 될 일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이 해병대 조사단 결론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인계서를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가 과하게 적용됐다고 생각하면서도 국방부 조사본부로의 사건 이관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해병대 수사단과 국방부 조사본부의 결론이 다르면 군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찰로의 이첩은 보류됐고, 경찰에 넘어갔던 사건 기록은 회수됐으며, 사건을 재배당받은 국방부 조사본부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 등을 혐의자에서 제외했다.
이 부분에서 박정훈 대령 측과 정치권은 '임성근 구명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혐의자에서 임 소장을 제외하려고 압력을 넣은 것이란 얘기다. 박 대령이 그렇게 의심하는 정황 증거는 이렇다. 박 대령은 지난해 군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7월 30일) 이종섭 장관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하니 장관이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느냐'라고 질문했다"고 진술했다. 또 "유재은 관리관도 8월 1일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 인계서를 본 이후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업무상과실치사 죄명도 빼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임성근 구하기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
임성근 소장을 경찰 이첩 대상에서 빼려는 시도가 해병대사령관보다 더 위쪽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는 단서도 존재한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단계에선 임 소장도 책임을 지거나 보직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군검찰 진술 등을 종합하면, 임 소장은 지난해 7월 28일 오전 10시 김 사령관을 만나 보직 관련 논의를 했고, 김 사령관에게 '모든 것을 내려 놓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사령관은 이어 7월 31일 오전 11시 17분 임 소장을 해병대 사령부로 분리 파견했다. 분리 파견이란 인사조치를 하기 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듯, 비위 의혹자를 부대로부터 빼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단장(임성근 소장)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됐던 분위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갑자기 바뀌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이날 낮 12시쯤 김계환 사령관에게 "사단장을 정상 출근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김 사령관은 임 소장의 분리 파견을 취소했다. 임 소장은 이어 낮 12시 54분 전산으로 휴가를 신청했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휴가 신청이 석연치 않다고 본다. 파견 명령을 받고 출근을 안 했는데 갑자기 파견이 취소되는 바람에, 소급해서 휴가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정종범 전 해병대 부사령관이 같은 날 오후 1시 30분에 이 전 장관 주재로 열린 현안 토의에 참석해서 작성한 메모를 보면 '보고 이후 휴가 처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정 전 부사령관은 군검찰 조사에서 "회의가 끝난 후 사령부로 복귀하던 중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으로부터 '1사단장에 대해 휴가는 하루, 내일부터 정상 출근'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수뇌부가 임성근 소장의 안위를 지속적으로 챙긴 정황은 계속 있다. 박 전 군사보좌관은 지난해 8월 1일 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달라"고, 지난해 8월 2일에는 "1사단장은 직무 수행 중인지요?"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김 사령관은 첫 번째 메시지에는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두 번째 메시지에는 "출근해서 임무 수행 중"이라고 답했다.
이런 정황이 이어진 끝에 임 소장은 결국 혐의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 국방부 조사본부(군의 최고위 수사기관)는 지난해 8월 20일 해병대 수사단과는 달리 임 소장 등 6명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경찰에 재이첩했다. 임 소장 등 6명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중간보고 결론을 뒤집은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실이 임성근 소장 구명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임성근 구하기' 주장은 터무니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종섭 전 장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한 이유에 대해 "초급 간부까지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하기는 과했다는 독자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은 지난해 군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7월 30일) 장관님께 '현장 통제 간부들까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했던 간부들은 그때의 충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씀드렸다"며 "장관님께서도 '나도 현장 통제 간부들이 가장 큰 고민이라, 국회·언론 설명을 중단시키면 많은 리스크가 있겠지만 중지시키는 게 맞겠다'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장관의 독자적 결정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이다.
이종섭 전 장관도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 출석해 "(지난해 7월 30일) 법무관리관의 조언 등을 듣지 않고 성급하게 해병대 수사단 조사의 결론에 결재를 한 게 후회스럽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박 대령 측은 이런 주장이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거짓 진술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임성근 소장은 자신을 구하려는 '모종의 시도'가 있었다는 것에 어떤 입장일까. 임 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천공과는 친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실이 사단장 하나 지키려고 정권이 날아갈지도 모를 위험천만한 짓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하자, 임 소장은 "(저도) 궁금하다"고 답했다.
공수처는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기록을 찾아오고 재조사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임 소장 개인의 구명을 위한 것인지 △이종섭 전 장관의 독자적 판단인지 △아니면 국방부의 윗선에서 정권에 미칠 타격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책임자 범위를 축소한 조치인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외압 의혹 수사의 남은 숙제들
경찰도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지난해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사건 기록을 이첩받은 경북경찰청은 채 상병 사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수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인 지휘 권한 여부, 채 상병 사망 당일 지침과 업무 일지 등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지난달 임성근 소장을 두 차례에 걸쳐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 만약 경찰에서 임 소장을 검찰에 송치하면 해병대 수사단에 힘이 실리는 것이고, 불송치하면 이첩 보류 지시와 사건 기록 회수가 정당하다는 의미라 이 전 장관 쪽에 유리한 결론이다.
박정훈 대령은 별도로 항명 혐의로 군사재판을 받는 중이다. 중앙군사법원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공판을 진행하면서 김계환 사령관, 이윤세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유재은 관리관 등을 증인신문했다. 내달 열릴 공판에서는 정종범 전 부사령관 등에 대한 증인 신문이 예정돼있다. 재판부는 증인 신문 내용과 군검찰단의 주장을 따져 박 대령의 항명이 정당했는지를 따져볼 예정인데, 박 대령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수사 외압 의혹은 다소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만 추모하면서 여생 보내게 해달라"
"7월 19일이면 저희 아들이 하늘의 별이 된 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수사에 진전이 없고 엄마의 입장에서 염려가 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날 물속에 투입을 시키지 않아야 될 상황인데 투입을 지시했을 때 구명조끼는 왜 입히지 않은 채 실종자 수색을 하라고 지시를 했는지 지금도 의문이고 꼭 진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 저희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채 상병의 모친이 꾹꾹 눌러쓴 이 편지는 이번 사건의 핵심을 보여준다. 죽지 않았어야 할 군인이 사망한 경위, 사고와 관련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만약 그 책임 추궁의 과정을 특정한 국가권력이 일부러 방해하거나 왜곡하려 했다면, 이는 국가기강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군인이 부당한 지시로 목숨을 잃었다면, 군인이 억울하게 자신의 권한을 침해 당하고 누명을 쓴 게 맞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도 결국 국가권력뿐이다. 그래서 공수처, 군사법원, 경찰이 내릴 결론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야권은 탄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권과 대통령실은 지나친 정치공세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기문란과 정치공세 사이, 진실은 어떤 쪽에 더 가깝게 접근해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진행 중인 사후수습 과정에선 작년 7월과 8월에 있었던 '수사 외압 의혹'과 같은 불상사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채 상병 어머니의 피를 토하는 외침에 국가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이 나라 군과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달려 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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